하이닉스반도체 이사회가 매각협상안을 부결시킴에 따라 하이닉스 처리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하이닉스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포함해 독자생존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아니면 정부와 채권단에 의해 다른 길을 걷게 될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건을 바꿔 매각협상을 다시 추진하는 방안은 물론 법정관리를 할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이를 위해 다양한 방안들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 매각 재추진 가능성 =채권단의 일부 온건파들은 매각재추진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연수 외환은행 부행장은 "추후 재협상 여부는 마이크론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권오규 재정경제부 차관보도 "성공 가능성은 낮지만 재매각을 추진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재매각 가능성을 거론했다. 마이크론측 대변인도 이날 매각안이 부결된 후 "하이닉스와의 협상이 결렬됐다고 즉각적으로 말할 순 없다"고 밝혀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부채탕감규모를 늘리는 한편 투신사의 동의를 이끌어 낼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게 관건이다. ◆ 법정관리.청산 가능성 =일부 정부관계자 및 한빛은행 등에서 논의중인 방안이다. 한빛은행 관계자는 "신규자금 지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회사채나 어음이 만기연장되지 않으면 하이닉스는 부도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하이닉스의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지만 장기적 생존엔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 배경에 깔려 있다. 그러나 이날 법정관리에 대한 발언이 나온 것은 감정적 대응 측면도 섞여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채권은행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실제 행동에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하이닉스측은 이에 대해 일부 부채의 만기를 2004년 이후로 미뤄 놓은 덕분에 그동안 원리금을 자체자금으로 상환했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버틸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 독자생존 가능할까 =하이닉스반도체가 독자생존에 성공하기 위한 절대 조건은 물론 D램 가격의 안정이다. 이와 함께 LCD사업, 오토넷, 두루넷 등을 매각하고 구조조정을 강화해 여유자금을 확보한 뒤 시황호전을 기다린다는 전략이다. 하이닉스가 내놓은 '독자생존 보고서'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올해와 내년 D램 평균가격(1백28메가 환산기준)이 4달러를 유지하면 독자생존이 가능하다. 이 경우 올해 △매출 5조8천억원 △투자 1조3천억원 △차입금 상환 8천4백억원 등을 기록해 세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1조원 이상의 현금축적도 가능하다. 회사측은 또 D램 평균가격이 3.3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경우엔 2조원 규모의 부채탕감(또는 출자전환)을 해주면 독자생존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나머지 소요자금은 12인치 생산라인 투자의 재조정과 비메모리 사업부문의 분리 및 외자유치(2억∼5억달러) 등을 통해 2조7천억원의 새로운 현금을 마련해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1.4분기 D램 평균가격은 1백28메가 환산기준으로 전분기보다 2배 이상 높은 4.28달러. 하지만 최근 들어 가파르게 값이 떨어지고 있는 점이 변수다. ◆ 왜 부결됐나 =하이닉스 이사회가 이날 협상안을 부결한 것은 채권단이 작성한 잔존법인 생존방안의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적과 마이크론 주가는 낙관적으로 예상한 반면 우발채무위험은 축소평가돼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매출액 7천억∼8천억원짜리 회사에 부채를 3조원이나 남겨 놓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이사진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론측도 채권단이 제시한 잔존법인의 회생방안에 대해선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이사회를 통과하기 힘들 것이란 의견을 채권단 및 하이닉스측에 보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택.이심기.김인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