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이 딸을 만나지는 못하지만...(그래도) 형제간의 인연이라도 이어야죠" 제4차 이산가족 방문단 가운데 남측 최고령자였던 어병순(94.남원시 아영면) 할머니가 26일 오전 유명을 달리하고, 딸 이부자(62)씨가 대신 방문단에 참여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27일 이씨의 남편 장중근씨에 따르면 이씨의 금강산 상봉 참여 결정은 '형제의 인연' 때문이다. 이제 부모의 정을 다시 새기지는 못하게 됐지만 자매의 정 만큼은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3일장으로 치러질 장례식에 참여할 수 없어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아내 이씨가 금강산에서 북녘의 언니 신호(67)씨에게 어머니의 소식을 전하고 형제의 끈을 이어가야 한다는 판단을 앞세웠다는 것. 장씨는 "하늘나라로 가신 장모님도 형제들의 만남을 기뻐하실 것"이라며 "고인은 영양제 주사까지 맞아가면서 둘째딸을 꼭 보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2남4녀의 자녀를 둔 어 할머니가 둘째딸 신호씨와 생이별한 때는 6.25전쟁 발발직후인 50년 8월 초. 당시 한양여중 2학년에 재학중이던 신호씨는 어느날 아침 잠시 학교에 다녀온다며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 한달 보름이 지난 그해 9월 중순께 집에 들어온 신호씨는 "북한 군에 자원 입대했는데 지금 북으로 가야 한다"며 옷가지를 챙겨 서둘러 떠났다. 이것이 반세기를 훌쩍 넘긴 모녀(母女) 이별의 시작이었다. "당시 언니는 간호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집을 나섰어요" 어머니 대신 금강산 행을 결정한 이부자씨는 그때를 떠올리며 "어머니는 그 때 언니를 붙들지 못한 것을 두고 두고 후회해 왔어요"라고 말했다. 한편 이씨의 남편 장씨는 "아내가 장모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선물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출발했다"며 "아내가 서울에서 대충 몇 가지라도 사가겠다고 했는데 잘 알아서할지 모르겠다"고 반세기를 넘긴 아내의 혈육 상봉에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