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2:34
수정2006.04.02 12:35
오전 6시께.
삼천포항의 짙은 어둠을 뒤로 하고 내달린 40분 뱃길.
이물과 일직선으로 마주한 섬의 윤곽이 예사롭지 않다.
최고 높이 4백m쯤의 조막만한 섬이지만 생각만큼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바다위라서인지 날카롭게 이어진 능선이 자못 높고 위압적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중심부에 자리한 사량도.
서로 마주한 윗섬과 아랫섬중 윗섬의 몸기둥에 해당하는 지리산(3백97m)에 들었다.
맑은 날이면 바다건너 뭍의 지리산이 한눈에 들어온다해서 지이망산으로 불리다 그냥 짧게 지리산으로 굳어버린 산.
산악인들이 봄 섬산행 목록중 으뜸자리에 올려 놓길 주저않는 이 산의 매력은 어떤 것일까.
돈지~지리산~불모산(3백99m)~옥녀봉(2백61m)~대항을 잇는 종주코스를 택했다.
초보자라면 좀 서둘러 5시간 길이다.
사량초등학교 돈지분교 정문 왼편으로 난 길을 따른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30여분 오름길 끝의 비껴누운 덩치바위.
아래에서 위까지 일부러 칼집을 낸 듯한 표면이다.
균형을 잡기 위해 허리굽혀 댄 손바닥에 전해지는 감촉이 날카롭다.
이곳이 첫번째 전망포인트.
아침햇살을 등진 돈지포구가 평화롭다.
바다 너머 공룡발자국으로 유명한 고성의 상족암, 거대한 삼천포화력발전소가 한눈에 잡힌다.
본격적인 산행은 지금부터.
지리~가마봉까지 칼바위능선이 이어진다.
한걸음 앞은 발하나 겨우 디딜 정도의 벼랑길.
고개를 돌려 양옆 한려해상의 풍광을 음미할 여유가 없다.
'짧은 시간의 주파를 자랑않고,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기 위해 하는 산행'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깨끗이 지워져 있다.
돌짬에 발목이 잡혀 넘어지거나, 겨우 확보한 홀드가 떨어져 내리기라도 하면 큰 부상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
대부분 암벽타기 하듯 몸을 낮추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한다.
정말 어렵다 싶은 지점에는 돌아가는 길이 나 있어 다행이다.
지리산, 불모산을 넘는다.
간이매점이 있는 안부의 숲길을 지나 가마봉 앞에 서니 굵은 동앗줄이 내려져 있다.
경사가 조금 완만해 용기를 내고 동앗줄을 잡는다.
해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소 놓인다.
사방을 둘러볼 여유도 생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멀리 바위로 된 거대한 옥녀봉이 왠지 부담스럽다.
전설 탓인지도 모르겠다.
옥녀봉에는 한 처녀의 한이 서려 있다고 한다.
욕정을 이기지 못한 홀로된 아버지를 피해 온 딸 옥녀가 몸을 던진 곳이라는 것.
이섬 사람들은 꼭 뭍으로 나가 혼인의 예를 갖춘다고 한다.
섬에서 혼례를 치르면 옥녀의 혼령이 나타나 파경에 이르게 한다고 믿기 때문.
사정상 섬에서 혼례를 올리더라도 신랑신부 맞절만은 안한다고 한다.
경사 80도 이상 되는 수직철계단을 내려서면 달마봉.
다시 동앗줄을 잡고 수직의 좁은 바위틈을 어렵사리 내려와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는다.
까마득한 옥녀봉 정상에서부터 동앗줄이 드리워져 있다.
숫제 군대의 유격훈련장 수준이다.
앞서 기다리던 아줌마들이 어디서 배웠는지 유격자세로 오르기 시작한다.
1백% 성공.
옥녀봉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는 맛은 올라본 사람만이 느낄수 있지 않느냐고 입을 모은다.
칼바위능선을 지나 암벽과 로프타기까지 해냈다는 성취감이 그 느낌을 더 강하게 해주는 것 같다.
5시간이 넘게 걸린 고된 산행이었지만 개운한 느낌이 앞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변화무쌍한 능선이 지루하지 않고, 장쾌하면서도 예쁘게 펼쳐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품안에 있어서 있까.
산행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하고야 마는 산.
사량도 지리산을 빼놓을수 없다.
사량도=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