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한달을 맞은 발전노조의 파업이 끝을 모른 채 극단적인 노-정, 노-사 대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민영화 원칙 불변'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정부와 사용자측은 최종 복귀시한을 넘긴 25일 4천여명에 이르는 무더기 해고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며, 노조측은 '질긴 쪽이 승리한다'는 자세로 배수진을 치고 맞서고 있다. 여기에다 발전노조의 파업을 지원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총파업 돌입은 물론 대정부 강경 투쟁 방침을 천명, 현 정부들어 노정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흐르고 있다. ▲극한 대치 배경 = 발전 산업 노사가 한달째 팽팽한 대치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것은 '민영화'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 차이 때문이다. 정부는 이미 2년전에 여야 만장일치로 법안이 통과돼 매각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민영화 철회를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근로조건이나 고용불안 등에 관한한 노조측의 요구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민영화 추진 원칙 자체를 되돌리려는 발상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정부의 이같은 대응에는 이번 파업에서 밀릴 경우 월드컵 등 국제행사와 선거 등을 앞두고 노동계의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라는 위기의식도 깔려 있다. 또한 한 달 가까운 파업을 겪으면서도 전력수급 차질 등의 예상됐던 부작용이 빚어지지 않고 있는 점도 정부측의 강경대응을 부추기고 있다. 당초 `민영화 방침 철회 없이는 파업 철회도 없다'는 입장을 보였던 노조측은 일단 민영화 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상당부분 이루어졌다고 보고 정부가 최소한 국민적 공감대를 이룬뒤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원칙만 밝힌다면 파업 철회를 검토할 수있다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 지난 23일 협상에서는 노.사가 모두 민영화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휴전'을 하는 방안도 제시했으나 정부측에 의해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측은 사측의 압박과 회유 등에 맞서 핸드폰 등을 동원, `산개투쟁', `번개투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노동 사회단체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파업 대열을 유지해 오고 있다. 통상 파업이 길어지면 조합원들 사이에 분열 양상이 나타나는 관행과는 달리 이들이 강한 단결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민영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절실한데다 지난해 발전노조 출범 과정에서 형성된 조합원들 사이의 강한 연대의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5개 발전회사의 분사이전 한국전력노조에 속해있던 노조원들은 기존의 노조 집행부가 파업을 철회하는 바람에 민영화를 앞당겼으며 `발전 노조원들을 팽개쳤다'는 섭섭함 때문에 지난해 7월 강성 집행부를 출범시켰고, 상급단체도 투쟁성이 강한 민주노총으로 바꿨다. 더구나 전국 32개 발전소가 오지에 위치해 있어 노조원들이 사택 생활을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업무에 복귀할 경우 `왕따'를 당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도 복귀율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회사쪽은 분석하고 있다. ▲해결책 없나 = 월드컵을 앞두고 안정적인 노사관계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기대했던 정부는 공기업 3개 노조 파업에 이어 발전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사측은 지난 한달간 `민영화 원칙 불변'이라는 원칙에 얽매여 막후 협상 등을 통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노조원 징계, 가압류 등 강경 일변도의 자세를 유지해왔다. 사측이 파업 초기 협상보다는 노조원과 가족에 대한 압박과 회유를 지속하면서 파업 대오가 흐트러질 것이라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했던 것도 패착으로 꼽히고 있다. 일단 복귀시한이 지났지만 해고가 결정되기 까지 3차례의 소명기회가 주어지는 등 상당한 시일이 남아있기 때문에 노사 양측은 막바지 줄다리기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은 26일 대의원대회를 통해 총파업 돌입을 결의하는 등 대정부 투쟁을 본격화하고 발전노조는 대규모 집회와 산개투쟁을 거듭할 전망이다. 정부는 징계절차를 밟아나가면서 복귀율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파업 장기화에 대비해 안정적인 전력수급대책을 유지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더기 해고의 후유증과 전력대란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정부와 사용자는 물론 노조측도 파업 장기화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어 힘겨루기를 지속하는 가운데 막후 협상을 통한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특히 지난 23일 밤 `노사가 민영화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조건'에서 협상이 재개됐듯이 노조측이 조합원들에게 복귀명령을 내리는 대신 희생자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일단 휴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적지않은 것으로 노동계는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파업 지도부는 명동성당에 남아 징계 문제 등을 놓고 전력 예비율이 낮아지는 때에 맞춰 제2의 투쟁을 준비할 것으로 보이고 정부와 사측은 징계 강행 등 강경대응할 수 밖에 없어 발전노조 문제는 한동안 국내 노정 관계의 핵으로 남을 전망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성한기자 ofcour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