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같은 세상...광기어린 복수만이 .. 영화 '복수는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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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에 관한 마키아벨리즘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상대가 재기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움없이 통렬하게 가해져야 한다"
사회적인 응징인 형벌과는 달리 복수는 개인적인 보복이다.
그것은 제도적 여과를 거치지 않기에 극단적인 양상으로 종종 표출된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복수는 나의 것'에는 복수의 잔혹한 얼굴이 새겨져 있다.
전작 '공동경비구역 JSA'에 스며들었던 '휴머니즘'의 자취는 말끔히 사라졌고, 인간의 악마성이 도처에 번뜩인다.
'하드보일드' 장르를 표방한 영화답게 설명은 가급적 생략됐고 액션과 표정은 극도로 건조하다.
선천성 청각장애인 류(신하균)가 누나의 신부전증 수술비 마련을 위해 어린이 유괴에 나서지만 누나는 자살로, 어린이는 사고로 숨진다.
류는 자신의 신장과 누나의 수술비를 절취했던 장기밀매업자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숨진 어린이의 아버지이자 중소기업체 사장인 동진은 유괴범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이들의 분노는 통제불능의 '관성의 법칙'에 지배되면서 '복수의 악순환'에 빠져든다.
장기밀매현장에서의 살인과 떼어낸 장기 먹기, 전기고문, 발목 동맥 절단, 어린이의 익사 등 참경이 잇따른다.
여기서 형사들의 존재는 류와 동진의 배역에 가리워져 있으며 살육의 현장에서 배제돼 있다.
형사로 대변되는 '문명의 응징'보다 개인의 복수는 야만성을 내포하며 훨씬 극단적이다.
잔혹극의 주인공인 류와 동진은 원래 평범한 소시민이다.
체인공장에 근무한 청각장애인 류는 둔감해서 행복하다.
공장 기계들과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에도 그는 평온을 누린다.
이런 소음들은 의도적으로 크게 들린다.
환자누나의 수발을 정성껏 들고, 유괴어린이에게도 다정한 모습에서 류의 착한 심성이 엿보인다.
동진은 자기 회사의 해직노동자가 벌인 자해소동에서 허둥대다 손을 베이기도 한다.
적어도 악덕 자본가는 아닌 셈이다.
이들은 딸과 누나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슬픔에 서서히 젖어든다.
사건에 따른 최고조로 격앙된 감정을 부각시키는 신파조의 표현방식과는 다르다.
류의 여자친구 영미(배두나)는 복수의 구조를 다층적으로 형성하는 배역이다.
'미군축출'과 '재벌해체'를 외치는 운동권출신의 영미는 '자본가로부터 돈을 찾으려는 유괴는 화폐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착한 유괴'라고 류를 꼬드긴다.
자본주의 체제내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계급간 대립이 비극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유괴찬성의 논지를 엉뚱하게 펴는 인물로 운동권출신을 설정한 대목은 아무래도 무리가 따른다.
영미, 류, 동진은 모두 자신의 뜻을 배반한 '운명의 희생양'들이다.
동진은 류를 죽일때 "난 네가 착한 놈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동진 역시 영미의 패거리들에게 비슷한 최후를 당한다.
자장면 배달을 왔다가 '재수없이' 살해되는 인물, 심각한 상황의 코믹한 대사처럼 인과관계 없는 설정들도 '모순된 운명'을 연상시키는 장치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