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장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재계가 본격적으로 제목소리 내기에 나섰다. 선거와 관련해 표를 의식한 정치논리로 경제논리를 왜곡하지 말고 선심성 정책을 배제해 줄 것을 거듭 촉구해 온 재계는 드디어 법에 의한 정당한 정치자금만 제공하겠다는 의사까지 공식화했다. 재계가 그동안 금기시 해온 정치자금에 관한 언급까지 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정치권에 대한 촉구이자 `압박'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어 재계의 목소리 높이기가 어디까지 계속되고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계 왜 목소리 높이나 = 재계가 선거를 앞두고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정치에 경제와 기업이 휘둘릴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대기업에 대한 국민정서가 여전히 부정적인 상황에서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표를 의식해 재계의 이해와는 반대되는 각종 이익집단의 요구에 맞춰 선심성 정책이나 공약을 남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논리에 치중하다 보면 경제논리와는 맞지 않는 정책이 잇따를 것이고 이 경우 회복기미에 접어든 경제가 타격을 받을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는 인식인 것이다. 또한 정치권에 대해서도 선거를 앞두고 부당한 정치자금 요구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미리 밝힘으로써 음성적인 정치자금 지출을 줄이는 한편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정치권을 유도하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재계는 다른 이익집단의 목소리에 눌리지 않도록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인다는 방침을 이미 확고히 했으며 지속적인 규제완화 및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등 기업환경 개선 등 `제 목소리 내기'를 올해 주요사업으로 밀고나갈 계획이다. 재계의 이같은 `강수'는 시기적으로 정권말기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재계 어디까지 목소리 높일까 = 사실 재계는 올들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월 회장단회의에서 이미 경제계의 정책제언을 마련해 각정당에 제출키로 했으며 지난 7일에는 민주당 박종우 정책위의장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고 정책의 일관성 유지 및 선심성 정책의 배제 등을 촉구했다. 정치자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SK 손길승회장이 지난 1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조찬회에서 "정당한 정치자금 요구에는 응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요구에는 응하지 않겠다"며 재계의 입장에 대해 처음으로 운을 띄웠다. 이어 전경련이 8일 열린 회장단회의 및 이사회를 통해 정당한 정치자금만 내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기업자율실천사항 등 경제계의 제언을 오는 28일 정기총회를 거쳐 채택키로 함으로써 정치자금 문제를 공식화했다. 전경련 손병두부회장은 회장단회의가 끝난뒤 기자들과 만나 원칙론적인 얘기임을 전제로 "회의에서 정치자금 문제에 대한 얘기가 있었고 기업의 투명성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상황에서 법을 어기면서까지 정치자금을 낼 수는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물론 재계가 이같은 입장을 정했다고 해서 정말로 개별 기업들이 음성적인 정치자금 제공과 이를 통한 유력후보에 대한 줄대기를 근절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이런 공감대를 토대로 재계는 이번 선거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잘 받아줄수 있는 후보를 어떤 형식으로든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손부회장은 직접적인 언급은 회피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이념에 맞는 후보를 선호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밝혀 선거를 앞두고 재계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릴 것임을 예고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준기자 ju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