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홍모씨(29)는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지난해 말 주소를 경기도 친척집으로 옮겨놨다. 국가직과 서울시 외 경기도의 공무원 시험까지 응시하기 위해서다. 서울시 공무원직은 지난 99년부터 거주자 제한이 없어졌다. 반면 다른 지방은 해당 지역 거주자에게만 응시자격을 주고 있다. 홍씨는 "서울지역 수험생은 다른 지방 수험생보다 응시기회가 적어 불리하다"며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 사이에선 '주소지 옮기기'가 이미 고전적인 수법"이라고 귀띔했다. 2월들어 공무원 채용시험의 원서접수 기간이 국가직 9급(1월30일∼2월8일)을 시작으로 경기도 9급(2월4∼7일), 서울시 7.9급(2월18∼22일)으로 이어지면서 수험생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특히 최근 수년간 취업난 등으로 수험생들사이에 하위직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 합격을 위한 각종 '비법'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 다양한 '합격률 높이기 작전'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인 신모씨(28.여)는 올해 국가직 원서 접수 때 일반행정직과 정보통신직, 교육행정직에 교차지원할 생각이다. 시험 날짜는 모두 같지만 복수지원 후 경쟁률이 낮은 곳을 골라 응시하겠다는 '막판 눈치작전'인 셈이다. 1∼2점으로 당락이 좌우되는 만큼 경쟁률에 신경쓸 수밖에 없다는게 신씨의 설명이다. 고학력자들의 '하향 안전지원' 경향도 뚜렷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지난해 11월 고졸 이상 학력자를 대상으로 9급 식품직 5명을 모집한 결과 전체 응시생 8백8명중 54명이 석사학위 소지자였다. 박사과정 졸업 예정자도 2명이나 있었다. 9급 중앙공무원 일반행정직에도 최근 3년간 대학원 졸업자들이 섞여 있다. 지난 95∼98년만해도 이 직종에는 대학원출신 합격자가 단 1명도 없었다. 일단 9급 시험에 붙고난 뒤 곧바로 7급에 재도전하겠다는 '편입시험파'도 많다. 서울시내 한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권모씨(27)는 "7급 승진까지 10년 이상 기다려야 하고 월급 차이도 많이 나 틈틈이 7급 공채에 대비해 왔다"고 말했다. 서울의 대표적 고시촌인 노량진 학원가는 대학 도서관에서처럼 아침마다 '자리잡기 경쟁'이 벌어진다. 이곳에 있는 N행정고시학원에 딸린 자습실 앞에는 날이 채 밝기도 전인 오전 6시께부터 자습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수험생들의 행렬이 2백m 남짓 늘어서곤 한다. ◇ "9급시험이 고시보다 어렵다" =그렇다고 합격을 장담하기도 쉽지 않다. 준비 기간이 대개 1년 이상 걸리고 1백점 만점에 90점 이상은 돼야 합격권에 든다. 경쟁률도 수십대 1은 보통이고 직종에 따라 수백대 1까지 치솟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9급 국가직 시험의 경쟁률은 일반행정직 기준으로 1백1.7 대 1을 기록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수험생들 사이에선 하위직인 7.9급 공무원 시험이 '고시보다 어렵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경쟁이 이처럼 치열한 것은 취업이 어려운 데다 민간기업의 감원 바람으로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의 메리트가 커진 것과 관련이 있다. 대전의 한 통신장비업체에 근무하다 최근 직장을 그만둔 김모씨(30)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쪽 집에서 '퇴출' 위험이 없는 공무원을 선호해 진로를 바꿨다"고 털어놨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