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재계를 지배하는 화두는 '재도약'이다. 물론 이 화두는 쉽게 마련되지 않았다. 지난 몇년간 경영전략의 단골메뉴로 올랐던 '구조조정'이나 '현금흐름'이라는 표현을 뛰어넘는데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재도약을 위한 발판은 튼튼한지, 에너지 충전량은 충분한지 등도 차분하게 따져봐야 했다. 도약을 방해할 수 있는 '맞바람', 즉 외부변수 동향도 문제였다. 이 때문에 재계는 새해들어 한달여가 지난 뒤에야 올해의 목표와 비전을 제대로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방향은 움츠러들기보다는 '한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가자'는 쪽이다. 비록 늦었지만 개별 기업들의 의욕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 아직 상당부분에 걸쳐 경제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았지만 이제 나름대로 자신감을 갖고 미국 테러사태와 같은 '돌발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는 준비를 갖췄다는게 CEO(최고경영자)들의 평가다. 새로운 성장 전략 =삼성 LG SK 현대자동차 등의 대그룹들은 이미 세계시장에서 생존력이 검증됐다. 국내에선 외환위기, 해외에선 경기침체와 테러사태의 여파를 딛고 질적 성장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실상부한 재계 1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올해 경영목표를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정했다. 이를 위해 각 계열사에 '변화'와 '혁신'을 재차 주문했다. 삼성이 여느 기업들과 다른 점이자 앞서나가는 점은 과거처럼 '실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올해 수익목표를 발표하지 않았다. 목표를 산출하기 어렵거나 수치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산술적인 이익보다는 실질적이고 내재적인 기업경쟁력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코닝 등 다른 전자계열사들도 마찬가지다. LG의 올해 화두 역시 '글로벌 디지털 경쟁력'이다. 구본무 회장은 '1등 LG'를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사실 다른 그룹들에 비해 '확실한 1등 분야'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LG의 고민이기도 하다. LG는 지난 2~3년간 각 부문에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하면서 한단계 높은 상승을 위한 준비가 끝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구 회장은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의 과제가 구조조정이었다면 이제는 새롭게 비상하는 모습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등 LG'의 전략은 연구개발(R&D) 부문에 대한 대폭적인 투자를 통해 뒷받침된다. 올해 R&D 투자 규모는 총 5조4천억원으로 연간 매출목표(1백3조원)의 5%가 넘는다. SK는 차세대 정보통신과 생명공학을 중점 육성한다는 방침아래 중국지역에 핵심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신규사업과 기존사업의 연결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효율성 중심의 경영을 구체화해 나가기로 했다. 손길승 회장은 "주주중시 경영으로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고 국내사업의 안정을 바탕으로 중국사업에 전력을 다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의 경영실적을 달성한 현대차그룹은 해외지향적이고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펼쳐 세계 '빅5'로 뛰어오른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정몽구 회장은 현대.기아자동차의 연산 규모를 3백만대로 정하고 향후 2~3년내 북미공장과 중국공장을 본격 가동, 총 4백만대 시대를 연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현대차 그룹은 특히 소형차와 중형차 부문에서 어느정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판단, 월드카와 NF(뉴EF쏘나타 후속모델)를 앞세워 세계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한다는 복안이다. 생존에서 도약으로 =한진 한솔 두산 금호 한화 등 중견그룹들은 또 다른 차원에서 '도약'을 천명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알짜사업들을 대거 정리했던 두산과 한화는 각각 중공업과 금융부문에서 새로운 전기를 모색하고 있다. 박용오 두산회장은 "매년 30% 이상의 영업이익을 달성해 오는 2006년까지 세계 최고수준의 수익성을 확립할 것"을 각 계열사에 시달했다. 한화는 최근 김승연 회장 지시로 (주)한화를 무역 건설 기계 등 3개사로 분할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김 회장은 "사업구조와 경영관리 분야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뉴한화'를 만들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어떤 파격적인 시도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과거 한화의 구조조정이 생존에 초점을 맞춘 성격이었다면 향후 구조조정은 비핵심사업을 자연스럽게 정리하면서 금융 등 핵심사업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치중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솔은 향후 3년간 신규사업을 억제하는 대신 제지 등 기존 사업을 중심으로 그룹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조동길 회장은 "모든 계열사와 사업영역에서 자본비용 이상의 수익률을 달성해 기업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적인 수익경영으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 작년에 테러사태 여파로 상당한 시련을 겪었던 한진과 금호도 올해를 경영정상화의 원년으로 정해 놓고 있다. 한진은 올해 항공 해운 중공업 등 모든 분야【?흑자경영을 독려하고 있고 월드컵 특수와 부산 아시안게임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금호는 타이어사업 해외매각과 아시아나항공 자산매각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박정구 회장은 "미래성장을 위해 R&D 투자는 적극 늘리면서 구조조정은 신속하게 진행해 기업가치를 높일 것"을 임직원들에게 주문하고 있다. 조일훈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