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08:58
수정2006.04.02 09:01
현대가 미국 AIG컨소시엄에서 1조1천억원의 외자를 유치키로 하고 구체적인 협상을 모색한 것은 2000년 6월~8월 사이.
현투증권(당시 현대투신)의 부실이 심해 1조2천억원 규모의 자본잠식이 드러났고 불똥이 다른 계열사로 번지려는 상황이었다.
연말이 되자 AIG측은 새로운 투자계획을 내놨다.
"한국정부와 공동으로 출자, 정상화시키자"는 것.
이때부터 정부는 현투증권, 현대투신운용에다 현대증권까지 끼워 파는 매각 협상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바로 이 무렵이었다.
진동수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1급상당)이 금융감독위원회 기자실을 찾았다.
"제일은행 매각 선례도 그랬듯이 진행중인 사안이 마구 보도되면 협상에 어려움이 많으니 발표 때까지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것.
물론 ''국익 차원''이라는 말도 덧붙었다.
갑론을박 끝에 출입 기자들은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자칫 "언론 때문에 망쳤다"는 비난이 부담스러웠던데다 "진척사항이 있으면 수시로 브리핑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
이렇게 정해진 ''엠바고''는 해가 바뀌고도 계속됐다.
엠바고가 장기화되면서 두가지 문제점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협상이 커튼 안쪽에서 이루어지면서 정부 밖에서는 아무도 이에 대해 의견이나 문제를 제기할 수 없게 됐다.
협상의 진행경과부터가 차단되다 보니 의견표명이란 불가능했다.
"협상내용을 밝혀라" "공개적으로 처리 방침을 논의하자"는 요구가 없지 않았지만 번번이 묵살됐다.
협상에 도움이 될만한 외부전문가의 제언이나 훈수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른 문제점은 시장에서 정보의 불균형(비대칭)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협상의 고비마다 협상관련 ''루머''가 증시에 나돌았고 그중 일부는 결과적으로 맞는 내용이었다.
활자화되거나 전파를 타지 않았을 뿐 알만한 사람은 다아는 ''눈가리고 아웅''이 되고 말았다.
결국 엠바고는 언론측의 문제제기에 따라 뒤늦게 깨졌지만 초기단계의 협상은 엠바고라는 울타리안에서 아무런 견제없이 진행됐다.
엠바고가 없어진 뒤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협상관련 보도가 나오기라도 하면 금감위는 해명자료 내기에 급급했다.
해명자료는 일률적인 부인 일색이었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차례씩 부인성명이 나오기도 했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잘못됐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이 무조건 "잘못된 기사"라는 말만 되풀이 됐다.
한 실무자는 "신문에만 났다하면 재경부 청와대 등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국회에서까지 ''어떻게 된 일이냐''며 따지고 드니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사공이 많아지면서 협상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바로 협상 당사자들에 있었다.
온갖 불리한 제안과 역제안들이 엠바고에 편승해 비밀리에 오고갔다.
보도가 안된다는 것을 빌미로 터무니 없는 굴욕적인 약속들이 되풀이 된다면 이는 엠바고라는 제도에 기생하는 ''도덕적 해이''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