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4일.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 개발 아젠다(DDA.일명 뉴라운드)'' 출범 협상이 난산끝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글로벌 경제체제를 향한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불과 한달여 뒤 유럽연합(EU) 12개국은 유로랜드를 공식 출범시켰다. 세계 경제의 핵심축으로 부상한 중국은 중화권과 동북아를 아우르는 중화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추진한다. 과연 세계 각국은 경제통합을 통한 세계화(Globalization)를 가속화하고 있는가, 아니면 지역화(Regionalization)를 심화시키고 있는가. 2002년 한국경제신문이 던지는 5번째 질문은 세계가 원심력(세계화)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 구심력(지역화)의 동선을 그릴 것인가이다. ◇ 세계화 지속될까 =19세기 서구의 산업화와 함께 본격화된 세계화는 1.2차 세계대전으로 잠시 주춤했다가 1960년대부터 급속도로 진전됐다. 이 세계화 과정의 핵심 고리는 무역 투자 등 국가간 경제활동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다. 지난 60년대 이후 세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4%에 머문 반면 수출물량 증가율은 GDP 성장률의 2배에 달했다. 직접투자 증가율도 80년대 전반기를 제외하곤 10% 이상의 고성장을 지속했다. 이러한 국가간 경제활동 확대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WTO로 이어지는 다자(多者)주의 체제를 통해 세계화를 급진전시켰다. 특히 최근의 인터넷 등 정보기술의 발전은 세계화를 가속화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 지역화가 세계화를 저해할까 =2차대전 이후 국가간 경제협력 필요에 따라 대두된 지역화는 지난 90년대부터 각 지역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일정 지역 국가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경제블록이다. 지난해 10월 현재 WTO에 통보된 FTA는 2백20건이며 이 가운데 1백52건이 발효됐다. 세계화의 선봉장격인 미국도 지난 94년 출범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미주자유무역협정(FTAA)''으로 확대, 강력한 경제블록을 형성할 움직임이다. 동아시아 경제의 쌍두마차인 중국과 일본은 동남아 국가와의 FTA를 통해 세계경제의 중심을 동아시아로 옮겨올 태세다. EU는 이미 경제통합 단계에 진입해 있다. 남미 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 경제의 주변국들도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지역 단위의 경제블록을 강화하는 추세다. 지역화가 심화된 것은 단기적으론 경제블록화를 통한 무역 효과에 있다. NAFTA 국가간의 무역비율은 지난 90년 41.4%에서 99년 53.9%로 확대했다. 이 기간동안 남미공동시장(MERCOSUR)의 역내 교역비율도 8.9%에서 20%선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지역화가 세계화와 대립하기 보다는 서로 보완하는 측면이 강하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세계은행 경제분석가인 모리스 쉬프는 "지역화는 역내 국가간의 무역장벽 해소를 통해 자유무역질서를 확대하는 것으로 개방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세계화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WTO도 지역화가 세계화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보고 FTA 등을 통한 경제블록 확대를 용인하고 있다. ◇ 거세지는 반세계화 물결 =지난 99년 12월 제3차 WTO 각료회의가 열린 미국 시애틀은 매캐한 연기와 폭력으로 물들었다. 비정부기구(NGO)의 격렬한 시위 탓에 뉴라운드 출범도 좌절됐다. 반세계화 운동이 확산되는 원인은 무엇보다 세계화의 진행과정이 선진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양상으로 흘러왔다는 데 있다. 세계화는 저개발국의 빈곤 심화와 환경파괴, 문화의 다양성 훼손 등 적잖은 부작용을 낳았다. 이로 인해 저개발 국가들은 반세계화 운동에 심정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세계화는 또 전세계 동반 경제위기도 불러왔다. 지난해 미국에서의 테러참사는 곧바로 런던 도쿄 홍콩 등 전세계 증시의 동반 폭락과 금융 대혼란으로 이어졌다. 선진국들은 이러한 반세계화 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국제공조시스템 강화에 나서고 있다. 개도국에 대한 경제지원과 국제기구를 통한 구호활동을 확대,개도국을 달래는 한편 외환·금융위기 확산을 막기 위한 협력체제도 마련중이다. ◇ 한국의 진로는 =세계화와 지역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를 발전시키고 있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지역화가 융합되고 있는 것. 한국 경제도 지난 60년대 이래 지속적인 무역 확대와 시장 개방을 통해 급속한 성장을 이뤘다. 박번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자원과 기술이 부족한 한국은 세계화의 조류에 합류해 가장 큰 혜택을 입은 국가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한국은 세계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동시에 지역화에도 적극 동참, 세계 경제의 주축으로 올라서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OECD 국가중 지역 협정에 단한곳도 가입하지 못한 유일한 국가다. 최근 일본이 싱가포르와 FTA를 체결하면서 한국만 외톨이가 되고만 것이다. 한.칠레 FTA와 동북아 FTA의 물꼬를 트고 WTO 협상에 대비한 여론의 합의가 시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 [ 자료협조 : 삼성경제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