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유럽에서 거울은 "사치품"에서 "필수품"으로 거듭났다. 유리가공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거울은 사랑에 빠진 남자들의 연적,멋부리는 여자들의 조언자가 됐다. 그러나 거울은 악마성을 지닌 물건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것은 마녀의 도구이며 그 안에 악령이 들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거울의 반사상이 야기하는 환상은 늘 경계의 대상이었다. 나르시스가 물속 자신의 모습에 사로잡힌 것처럼 거울은 덫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거울속의 나는 왼손잡이"란 싯구처럼 반사상은 대상을 왜곡시킴으로써 기만과 사술의 상징으로도 통했다. 영화 "비독"은 거울의 악마성에 근거한 공포 스릴러다. 19세기 파리에서 자신의 거울가면에 얼굴이 비친 자들을 반드시 살해하는 범인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타이틀 롤인 비독(1775~1875)은 대도와 명탐정으로 변신하며 프랑스인들로부터 영웅으로 숭배된 실존 인물. 프랑스 대혁명,나폴레옹의 등장,보불전쟁,파리코뮌 등 격변기에 루팡과 셜록 홈즈를 합친 듯한 인물에 국민이 빠져든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프랑스의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가 비독역을 맡았다. 영화는 거울가면을 쓴 살인마가 명탐정 비독을 검술로 제압,화염속으로 추락시키는 것으로 시작된다. 비독의 마지막 소원은 범인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비독의 사망소식에 파리시민들은 비통함에 잠긴다. 비독의 사망은 선이 악에 패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전기를 집필하던 젊은 기자 에틴 보아세가 비독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조사한다. 그러나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관련자들은 하나씩 죽는다. 파리뒷골목의 음습함,연금술사 작업장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창녀촌의 현란함 등이 세트촬영으로 재현됐다. 비독과 살인마의 액션,엽기적인 살인행각,막판 반전 등은 관객의 시선을 시종 붙든다. 정치인의 개입으로 범인수사와 정치상황은 맞물려 돌아간다. 나폴레옹이 물러난 뒤 왕정복고운동을 이끈 샤를 10세 왕은 왕권 강화와 귀족 우대 정책을 펼치다가 1830년 7월혁명의 발발로 단두대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다. 비독과 유리가면의 대결 뒤에는 민중과 귀족들의 힘겨루기가 치열하게 전개된다. 특수효과 전문가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피토프는 제라르 드파르디유를 내세워 관객들의 애국심을 자극했다. 28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