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작스레 레벨을 높인 달러/엔 환율로 인해 연말을 앞둔 외환시장이 재차 고민에 빠졌다. 공급 우위의 장세가 전개된 가운데 각종 외자유치가 성사됨으로써 외국인 직접투자(FDI)자금의 매물화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던 외환시장은 일단 달러/엔에 관심을 옮기고 있다. 2001년 한 해가 접히면서 연말 결산준비에 한창인 기업이나 금융회사의 경우, 결산상 필요한 일부가 외환시장과 관련을 맺고 있어 연말 환율수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기업은 연말결산에, 금융기관은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 산정이 달려있다. 연말 각 은행이 고시하는 기준환율이 각 기업이나 은행의 외환자산이나 부채 규모를 확정하는 '기준'이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달러/엔의 급등에 따라 당초 예상했던 연말 환율 예상치가 조금씩 상향조정되고 있다. 당초 1,270원대를 예상했으나 엔 약세의 진행정도에 따라 1,280∼1,290원으로 상향조정된 상태. 일부에서는 달러/엔이 연말안에 130엔에 안착한다면 1,300원 근방에 머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엔 약세와 역외세력의 매매동향이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맞서 FDI자금 등 공급 물량이 얼마간의 상충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달러/엔 다음 타겟은 130엔 = 달러/엔이 3년 중 처음으로 다시 127엔으로 올라선데다 지난주 말 한때 127.94엔까지 올라 38개월중 가장 높은 수준을 가리켰다. 지난주 금요일 도쿄에서 지난 4월 2일 기록한 연중 최고치 126.84엔을 가볍게 돌파하고 차례로 저항선을 뚫고 올라선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시장 관계자들은 달러/엔의 다음 타겟을 130엔으로 지목하고 있다. 한마디로 '셀 저팬(Sell Japan)'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명약관화하게도 일본의 펀더멘털이 취약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신용등급 하향조정,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 등 엔화가치를 끌어내릴 요인이 산재해 있다. 이에 일본 정부도 최근 마지막 경제회생의 카드로 '엔화 약세를 통한 수출 촉진'을 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가뜩이나 약세일로의 엔화에 기름을 붓고 있으며 펀더멘털과 보조를 맞춘 약세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시장에 130엔대까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음을 시사한 것. ◆ 연말 환율의 상향 조정 가능성 = 이같은 엔화 약세에 동조해 원화 환율도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최근 각종 외자유치가 타결되면서 FDI자금의 매물화 가능성으로 하락요인이 한층 더 부각됐으나 달러/엔이 가로막고 나선 셈. 수요 공급을 야기하는 변수가 많은 연말 장세에서 심리적인 불안 요인이 추가됐다. 우리 외환당국은 일본의 엔 약세 정책에 대해 '인접국궁핍화(beggar-thy-neighbor)'임을 들어 불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달러/엔에 동조한 달러/원의 상승은 '이유있음'을 들어 환율을 일단 시장 판단에 맡길 것을 시사하고 있다. 시장관계자들은 달러/엔이 연말까지 129∼130엔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수급변동을 야기할 수 있는 변수들이 많은 연말 장세에서 달러/엔의 상승은 심리적인 불안감을 가중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일단 수급상으로는 공급요인이 우세하다. 신한금융지주회사와 BNP파리바은행의 전략적 제휴에 따른 지분 매각자금을 필두로 △LG에너지에 대한 SPI의 자금 2억달러 가량이 12월말까지 입금될 예정이며 △중소기업 58개사가 해외에서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에 따른 3억3,700만 달러가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 또 한투증권이 1억4,000만달러 규모의 외수펀드 매각에 성공하고 금호산업의 타이어사업부문 해외 매각건도 금호그룹의 자금사정과 맞물려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 금호산업의 매각 추정대금은 12억∼15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통신의 정부지분 매각건은 일단 시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시장 유입의 가능성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 수요의 경우 잠재된 공기업, 은행권의 충당금 등이 언제든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수급요인보다는 엔화의 약세진전 속도와 이에 맞춘 엔/원 환율의 수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추가로 원-엔 비율이 10대1 아래로 일시적으로 떨어질 것을 감안한다면 달러/엔의 130엔 진입과 함께 1,300원 근방까지 다가설 여지가 있다. 그러나 1,300원에 근접할수록 물량 공급이 많아질 것으로 보여 연말까지 이 수준을 지속시키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즉, 달러/엔 상승과 물량 공급이 맞물려 대체로 1,280∼1,290원대에서 연말 환율은 수렴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역외세력도 엔 동향에 따른 매매동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 시중은행의 딜러는 "당초 연말에 1,260∼1,270원 수준을 보다가 엔 레벨을 보니 작년말과 비슷한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며 "역외에서 엔에 따라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도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