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린치(55) 감독. "이레이저 헤드"(77년) "블루벨벳"(86) "광란의 사랑"(90년) 등 대표작들에서 주류영화가 외면했던 임신공포,새디즘과 마조히즘,내재된 폭력 등 반문화(anti-culture)를 정면으로 다뤄 "컬트의 제왕"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린치의 최근작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년)와 "스트레이트 스토리"(99년)가 30일과 12월1일 잇따라 개봉된다. 올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린치의 작품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다면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비주류적인 그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주류영화에 가깝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인격의 이중성을 미스터리방식으로 풀어 놓은 영화다. 제목은 로스앤젤레스(LA)에서 산타모니카로 향하는 언덕위 도로를 뜻한다. 한밤중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리타(로라 엘레나 헤링)는 사고로 기억을 상실한 뒤 베티(나오미 왓츠)의 도움을 받아 "기억찾기"에 나서면서 기괴한 상황에 직면한다. 극단적인 성격인 등장인물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교묘한 방식으로 교차된다. 스타지망생인 베티는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줄 "아담 케셔"감독과의 만남을 제쳐두고 리타의 정체성 찾기에 동행할 만큼 "인정많은" 여자다. 리타는 정체성을 상실한 여성이다. 그러나 리타의 기억상실 이전,그들의 인격은 반대였다. 리타와 동일인인 카밀라는 성공을 위해 아담 케셔 감독의 연인이 되고 애인 다이안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베티와 동일인인 다이안은 질투에 몸서리를 치고 그녀를 죽일 결심을 한다. 카밀라와 다이안은 원래 "동성애" 관계(리타와 베티관계도 마찬가지)였지만 카밀라가 "이성애"로 빠지자 그들간의 사랑이 깨진 것이다. 여기서 카밀라와 다이안은 인간에 내재한 악(惡),리타와 베티는 선(善)을 대변하는 존재들이다. 선악은 사실 한 뿌리이며 시차와 상황에 따라 모습을 달리할 뿐이다. 작품구성은 플래쉬백(과거회상)형식을 띠고 있지만 인물의 감정흐름면에서는 작품의 진행과 일치한다. 베티는 자신에게만 의지하는 리타에게 헌신하지만 리타가 자신을 배반한 카밀라로 변할때 베티 역시 다이안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멀홀랜드..."가 음습한 정서에 바탕한 어두운 영화라면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눈부신 채광을 기조로 한 밝은 영화다. 스트레이트란 이름의 노인(리차드 판스워드)을 내세워 가족과 인생에 관한 따스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멀홀랜드..."류의 파격적인 영상 대신,별이 쏟아지는 밤하늘과 황금색 들판,눈부신 단풍과 붉은 석양 같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쇠한 스트레이트는 불화로 소식을 끊고 지내던 형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떠난다. 운전면허증이 없는 그는 잔디깎는 기계를 개조해 "천천히 그러나 중단없이" 간다. 그는 여행길에서 만난 가출한 여자,자전거 여행족 등 여러 사람들에게 인생의 교훈을 들려준다. "나이들어 부질없는 일에 매달리지 않을 때가 좋고 젊은 시절을 떠올릴 때는 마음이 편치 않다"는 노인의 말에는 젊은 시절에 대한 린치 감독 자신의 아쉬움이 배어 있다. 주류영화의 감수성이 녹아 있는 것이다. 비주류영화의 지평을 넓혀온 린치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영화에 대한 자신의 이중적 시각을 고백하고 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