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지난 97년 외환위기 때 원화가치 폭락에 따른 해외 차입금(원화 기준)의 급증으로 위기 상황을 맞은 적이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일류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바로 이같은 최악의 조건에서도 기업의 존립이 위협받지 않는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보고 내년 경영목표를 '무차입 경영'으로 결정했다. 물론 여기에는 내년 세계 경기를 낙관할 수 없는 만큼 '유비무환'의 경영을 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 부채 구조와 무차입 경영 실현 방안 =삼성전자의 지난 9월말 현재 차입금은 해외법인 부채를 포함해 모두 5조1천억원.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게 본사가 발행한 회사채로 국내 1조7천10억원, 해외 1조3천9백60억원 등 3조9백70억원(9월말 기준)에 달한다. 나머지는 본사의 금융기관 차입금(7천억원 미만)과 해외법인 부채 등이다. 내년말까지 총 차입금을 1조4천억원대로 줄여 무차입 경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를 현금으로 상환해야 한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는 국내 3천3백억여원과 해외 1천7백억원 등 5천억원 규모이며 내년에는 해외 발행분만 4천2백억원 정도 만기가 돌아온다. 삼성전자는 현재 보유중인 유동성이 2조3천억원에 이르는데다 D램값 반등 등으로 내년에는 이익 규모가 올해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돼 이를 현금 상환하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은 59개 해외 판매 및 생산법인도 부채 비율이 평균 1백75%(작년말 기준)로 본사(작년말 66%, 올 9월말 46%)보다 훨씬 높지만 모두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판매법인의 경우 물건을 팔아 남은 돈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생산법인은 단기간내에 투자비를 회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하면 무차입 경영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중동지역 판매를 맡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걸프판매법인(SGE)은 이미 무차입 경영을 실현하고 있다고 삼성은 덧붙였다. 삼성전자가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실시키로 한 5천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도 철회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 IR(기업홍보) 관계자는 "자사주 매입보다는 빚을 갚는 것이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된다는게 내부 판단"이라고 전했다. ◇ 무차입 경영의 실효성 논란 =삼성전자의 무차입 경영 실현 여부는 빚을 갚는 것보다 천문학적 액수에 이르는 투자비를 어떻게 조달하느냐에 달려 있다. 반도체 업종의 특성상 설비 신.증설과 연구개발(R&D)에 매년 수조원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들어 지난 9월말까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2조2천2백62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 5조9천7백43억원의 37%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내년에 계획하고 있는 투자는 올해보다 3분의1 가량 줄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3조5백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현재 확보하고 있는 2조3천억원의 현금 유동성을 감안하더라도 투자비를 확보하고 회사채를 상환, 무차입 경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내년말까지 세금을 빼고 5조원 이상 벌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칫하다간 빚 갚는데 바빠 투자비를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는 대목이다. 삼성전자 일각에서 무차입 경영이라는 '명분'에 무리하게 사로잡힐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적절한 투자 시점을 놓치게 될 경우 오히려 성장잠재력만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가 기획팀의 의도대로 D램값 반등세가 지속돼 내년에 무차입 경영을 실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