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 방배동의 CJ39쇼핑을 찾으면 곱게 물든 단풍나무 사이로 협력업체 사람들과 상담하는 임직원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평일 저녁이나 토요일 오후에는 부서별로 생맥주 회식 모임도 많다. 지난 여름 사옥을 옮긴 후 생긴 사내 풍속도다. 새 사옥은 남태령의 우면산 자연공원과 인접해 경관이 빼어나다. 앞마당만 3천평을 넘는데다 호수와 정원이 조성돼 있어 휴게시설 같은 느낌을 준다. 문학경영이란 표현이 나올 정도인 조영철 사장의 이미지와 꼭 맞아 떨어진다. 현대방송(HBS)이 쓰던 이 건물 8층에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집무실로 쓰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용산의 허름한 임대건물에서 3백억원짜리의 널찍한 사옥으로 이사한 데는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CJ39쇼핑의 의지도 담겨 있다. 조 사장은 회사를 인수한 후 인재 확보와 업무 시스템 개선 등 내부 조직 개편을 마무리하고 21세기형 홈쇼핑 업체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그가 사령탑을 맡은 후 CJ39쇼핑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지난 99년 말 40%선까지 떨어졌던 시장 점유율이 1년 6개월 만에 선두사인 LG홈쇼핑과 거의 대등해졌다. TV홈쇼핑 부문의 점유율은 47%(10월 추정치)선까지 높아졌고 일부 시청률 조사에선 경쟁사를 앞질렀다는 결과도 나온다. "기업의 경쟁력은 사람과 조직에서 나옵니다. 능력있는 임직원을 많이 키워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게 경영자의 임무라고 봐요" 조 사장은 "TV홈쇼핑 개국 초기에 앞서갔던 39쇼핑이 LG홈쇼핑에 선두를 내준 것은 인재를 빼앗기고 조직이 와해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게 그의 지론이다. 조 사장은 사장 취임 후 사람에 대한 투자와 조직 활성화에 힘을 쏟았다. 제일제당은 물론 경쟁사에서 유능한 인재를 영입했고 기존 39쇼핑 인물을 섞어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회사가 발전하려면 혈연 지연 학연이 아닌 능력으로 평가받는 풍토가 정착돼야 합니다" 조 사장은 회사 조직은 '순혈'이 아닌 '혼혈'로 구성돼야 생명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원을 채용할 때 지역은 물론 출신대학도 따지지 않는다. 조 사장이 경영에서 '인재 제일주의'를 외치는 것은 27년간 삼성그룹에서 일하면서 몸으로 체득한 지혜다. 지난해 5월 CJ39쇼핑으로 옮기기 전까지 삼성그룹 계열사에서만 일해온 정통 '삼성맨'이다. 회장 비서실에서 18년을 일하면서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이건희 현 회장이 경영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배웠다고 한다. 조 사장이 고 이병철 회장을 모셨을 때의 일화 한토막. 73년 에버랜드 건설을 계획한 이 회장은 비서실 직원들과 함께 땅을 보러 다녔다. 이 회장은 용인 및 분당 지역을 둘러보면서 20∼30년 안에 용인과 서울이 하나로 붙어 용인 땅의 가치가 치솟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두 분 회장님을 모시면서 대기업의 경영자는 적어도 30년 앞을 내다보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조 사장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두뇌가 명석하고 상황 판단이 뛰어난게 장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미래 유통시장을 주도할 새로운 유통 업태인 TV홈쇼핑 회사의 경영자로는 적임자라는게 지인(知人)들의 평가다. "오는 2005년까지 연간 매출 3조원에 2천5백억원의 이익을 내는 초우량 유통회사를 만들겠습니다. TV홈쇼핑 업계 1위가 아니라 유통 산업의 역사를 새로 쓰는 종합 홈쇼핑 업체가 목표입니다" 조 사장은 TV홈쇼핑 위성TV 인터넷쇼핑몰 카탈로그판매 등 4개 유통채널을 묶는 종합 홈쇼핑 업체를 만들어 유통산업 발전을 선도하고 소비자에게 편익을 주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상품 정보와 보는 재미를 함께 주는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 서비스를 강화할 계획이다. 조 사장은 업무에선 냉철하지만 부하 직원들에겐 매우 자상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가 평사원에게 장미꽃 선물을 하는 것은 지금도 사내에서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삼성화재에서 영업담당 임원을 맡을 때는 매달 우수 판매사원을 뽑아 장미꽃을 전달해 여사원들을 감동시켰다. 지난해 CJ39쇼핑 대표로 취임한 직후에도 5백여명의 텔레마케터(TM) 모두에게 장미꽃을 보내 사기를 북돋워 줬다. "직원들은 상사가 세심하게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고 느낄 때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최고 경영자가 신경을 쓰는 만큼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좋아진다"고 한다. "인생은 도전하는데 의미가 있어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내가 살아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조 사장은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져도 용기가 있는 사람은 극복해 낼 수 있다"면서 "지금은 한국인 모두에게 자신감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 ------------------------------------------------------------------ [ 약력 ] 46년 함경도 원산생 73년 삼성그룹 입사 회장 비서실 근무 74년 연세대 경영학과졸 83년 삼성물산 섬유수출관리부장 93년 삼성그룹 회장실 인사팀장 98년 삼성화재 부사장 99년 삼성화재 손해사정서비스 대표 2000년 5월 CJ39쇼핑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