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미국의 심장부에서 발생한 납치 민항기를 이용한 동시다발적 테러사건의 용의자들이 이슬람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오마사 빈 라덴이 은둔중인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보복 공격이 가시화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도 테러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한편, 지금까지와는달리 '비서구적 시각'에서 이슬람 문명을 조망하려는 노력의 계기가 되고 있다. 책을 통해 이슬람에 대해 접근해 보면 우선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책으로 「문명의 충돌」(김영사)을 들 수 있다. 냉전시대가 종식된 뒤인 지난 93년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쓴 이 책은 21세기 이슬람 문명과 서구 문명간의 필연적 충돌이라는 '문명 충돌론'을 제기해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책은 이슬람 문명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부족하고, 서구적 시각에서 종교 중심의 갈등과 대립 양상만을 부각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독일의 국제관계학자 하랄트 뮐러에 의해 그 허구성과 오류를 지적받았으며 문명의 평화공존론을 주장하는 '문명 공존론'을 대두시키는 계기가 됐다. 문화적 총체로서의 이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최근 출간된 「이슬람」(청아출판사)이다. 이슬람문화연구소 이원삼 소장 등 국내 이슬람학자 12명이 쓴 이 책은 극소수이슬람 급진세력의 폭력투쟁에 의해 묻혀 버린 이슬람 문명을 무슬림(이슬람 사람)의 생활양식을 통해 집중 조명했다. 책은 아랍과 이스라엘 분쟁의 실체, 석유 문제, 여성 문제, 중동의 주요 정치지도자, 문학과 예술, 소수민족 분쟁 등 이슬람권 문화 전반을 아우르면서 이슬람과우리의 연관성도 짚어볼 수 있도록 한국과 이슬람의 고대 문화교류 등도 분석하고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를 당한 무슬림들이 왜 이들보다 미국을 더 싫어하는지, 걸프전 발발의 진짜 이유는 뭔지 등과 관련, 기존의 왜곡된 이슬람 시각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현지 문화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중동의 역사와 사회문제, 정치.경제 사정은 국가안보정책연구소와 한국외대 아랍어과 손주영(孫主永) 교수가 함께 쓴 「중동의 새로운 이해」(오름)에서 한눈에포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실체는 무엇이며, 이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벌이는 무력투쟁이 '성전(聖戰)'인지, 아니면 서구권이 주장하는 '테러'인지를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하다. 한국외대 아랍어과 김정위 교수의 「이슬람 입문」은 종교적 측면에서의 이슬람을 집중 조명했고, 같은 대학 홍순남 교수의 「중동 정치질서의 이해」(한국외대 출판부)는 정치 분야에 관한 뛰어난 저술로 인정받고 있다. 노엄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이후.2001)은 이번 테러사건을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책이다. 촘스키는 팔레스타인의 '자살폭탄 테러'의 실제 원인이 이스라엘의 무모한 점령지 확장정책과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전체 아랍인에 대한 인종차별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또 종교적.인종적 갈등을 넘어서는 이-팔 분쟁의 배후에는 '수치스럽고 몹시 위험한' 정책을 펼치는 미국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을 지적, 비서구적 시각에서 '이-팔-미' 삼각관계를 분석했다. 이밖에 버나드 루이스 전 프린스턴대 교수의 「중동의 역사」(까치)는 중동 국가들이 펼치는 반미(反美)정책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살필 수 있는 책으로손꼽히며, 하경근 전 중앙대 교수의 「중동의 현대정치」(법문사)는 팔레스타인과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상세하게 분석한 책이다. 한국이슬람학회 이희수(李熙秀.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회장에 따르면 최근이슬람권의 엘리트 지식인들은 이란의 하타미 대통령이 제창한 '문명 대화론'을 수용하는 추세다. 이슬람은 화해와 용서, 절충과 화합, 평화의 종교이며, 종교와 문명간 대결이아닌 대화를 통해 세계사적 발전을 이룩해 가자는 것이 문명 대화론의 요지다. 이 교수는 "테러는 국제법을 초월해 인류의 보편가치를 위반하는 행위"라고 이번 사태를 비난하면서도 미국의 보복행위에 대해서는 "휴머니즘을 호소하는 인류의목소리를 저버리는 또다른 민간학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세계는 종교의 다원화를 인정하고 공존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추세"라며 "이슬람을 종교적 체계가 아닌 문화적 체계로 접근하는 학계와 우리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k02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