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훤히 보이는 전화기, 빨래 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세탁기,집진 정도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진공청소기…' 실용적이면서도 개성을 살린 이같은 상품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석유화학 제품 중에서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꼽히는 '투명ABS(아크릴로니트릴 부타디엔 스틸렌)'가 바로 '누드 상품'의 소재다. 석유화학 제품 중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늘 접하면서 살고 있지만 그 소재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ABS도 마찬가지다. 이 소재는 대개 컴퓨터 전화기 청소기 등 전기.전자 제품의 외장재로 많이 쓰이고 있다. ABS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크게는 일반적으로 대량 생산되고 있는 '범용ABS'와 '특수ABS'로 나뉜다. 범용제품은 전기.전자 제품의 외장재나 자동차 내.외장 부품 등에 주로 쓰이는 하얀색 계통의 합성수지이며 안료를 넣어 다양한 색상으로 생산된다. 특수ABS에는 속이 들여다 보이는 '투명ABS'와 모니터용 '난연ABS'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지난 90년대 말 속이 보이는 '누드 제품'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투명ABS가 각광을 받고 있다. 가격은 t당 2천달러 안팎을 오르내리지만 범용제품에 비해 2배 이상 비싼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가전 통신기기 등 전방산업의 세계적인 불황으로 가격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지만 지금도 t당 1천9백달러선. 범용제품(t당 8백달러선)의 2.4배 가격에 거래된다. 국내 기업 중에선 LG화학이 최대 생산업체다. 연산 2만t 규모로 설비규모에서 일본 도레이사와 같다. 세계시장 점유율도 두 회사가 1,2위를 다툰다. 두 회사 모두 전용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다. 다음으로 일본 덴카사와 TPC사가 각각 연산 1만5천t, 독일 바스프사와 대만 치메이사가 각각 1만t 규모의 설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들 4개사는 전용라인이 없다. 일반ABS 생산라인에서 투명ABS를 만들어낸다. LG화학의 투명ABS는 기술에서도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다. 이 제품의 기술력을 재는 잣대는 투명도와 탁도(濁度). 업체들마다 공개를 꺼리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LG화학은 자사 제품의 투명도가 일본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A사와 같은 90%(유리의 투명도는 99%)라고 밝힌다. 흐린 정도를 나타내는 탁도는 2.5%로 일본 A사의 3.5%를 앞지른다는 평가다. 투명도를 높이는 데는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고무성질을 지닌 '부타디엔'을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불투명한 고무성분을 투명하게 만드는 공중합(co-polymerization) 기술이 뒷받침돼야 투명도를 높이고 탁도를 낮출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무성분이 들어가기 때문에 단단하기는 하지만 도자기처럼 딱딱하지 않아 쉽사리 깨지지 않는다는 것. LG화학의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세계 최고 가전메이커인 일본 소니가 지난해부터 이 회사 제품을 구매한다는 사실에서도 잘 입증된다. 소니는 각종 게임기용 패드(컨트롤러)에 LG화학의 투명ABS를 사용한다. LG화학은 지난해 이 분야에서 약 2만t의 판매실적을 올렸으며 이중 내수시장에 45%를 공급하고 나머지는 중국 등 해외로 수출했다. 이 회사 ABS사업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에 그치지만 수익은 15%에 달하고 있어 회사 차원에서 '미래 전략품목'으로 육성하고 있는 고수익성 상품이기도 하다. 범용제품을 놓고 메이커들이 과당경쟁을 벌여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차세대 고기능성 플라스틱'이기 때문이다. 제품의 투명성과 관련해 경쟁 품목이라 할 수 있는 대체재로 폴리카보네이트와 PMMA(폴리 메틸메타 아크릴레이트:아크릴)를 들 수 있다. 그러나 PMMA는 값이 싼 대신 깨지기 쉽고 잘 긁힌다는 단점이 있다. 투명ABS는 단단하고 긁히지 않는다. 또 하나의 대체재인 폴리카보네이트는 투명도가 뛰어나지만 값이 투명ABS보다 15% 가량 비싸고 가공성과 착색성이 떨어져 수요가 투명ABS 쪽으로 급속히 이동하는 추세라고 LG화학은 설명한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