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제...미국은 지금...] (下) 재주는 곰이 부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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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버그 와이스 버샤드 하인스 앤드 리라크(Milberg Weiss Bershad Hynes & Lerach).
다소 긴 이름의 이 법률회사는 적어도 집단소송과 관련해서는 미국내 최고다.
캘리포니아지역에서 발생하는 집단소송의 80%이상을 담당하는등 미국 전체 집단소송의 60% 가량을 맡고 있다.
뉴욕 LA 샌프란시스코등 미국 주요도시에서 1백70여명의 전문변호사들이 활약한다.
이 회사 홈페이지(www.milberg.com)을 들어가면 다양한 회사 이름들이 눈에 띤다.
AOL 루슨트테크놀로지등 잘 알려진 회사에서 부터 이름 모를 중소업체들까지 수두룩하다.
골자는 이들 회사에 대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으니 동의해 달라는 것.
예를 들어 AOL 5.0 사용자들의 불만사항을 적어주거나 1999년 10월부터 2000년 12월까지 루슨트테크놀로지의 주식을 샀던 사람들은 소송에 참여해 달라는 주문이다.
상장회사의 주가 하락률을 보여주면서 주가 하락이 집단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이 2백여개에 달한다.
미국의 집단소송은 대개 이런 식이다.
피해를 본 사람들이 억울함을 참지 못해 변호사에게 소송을 의뢰하는 것보다 변호사들이 소송을 만들기 위해 직접 '건수'를 찾아나서는 경우가 훨씬 많다.
지난 6월 합의에 도달한 블록버스터 케이스도 그 중 하나다.
전세계에 7천7백개 점포를 가지고 있는 세계 최대 비디오 대여업체인 블록버스터는 지난해 텍사스 댈러스의 케빈 뷰캐넌이라는 변호사가 주도하는 집단소송에 휘말렸다.
비디오를 제때 반납하지 못할 경우 내는 연체료가 비싼 데다 연체료율 변경사실을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다는 것이 소송의 내용이다.
몇푼 안되는 연체료 때문에 소송을 할 소비자는 없다.
그러나 뷰캐넌은 그런 소비자 불만사항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결국 합의를 이끌어 냈다.
회사측은 어쩔 수 없이 합의를 했지만 잘못한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소송을 질질 끌면 시간과 돈만 더 낭비되기 때문에 빨리 정상업무에 복귀하고 싶어 합의를 했다"(카렌 래스코프 홍보담당 부사장)는 설명이다.
합의 내용은 연체료를 냈다는 것을 입증하는 영수증을 가져오면 최고 18달러까지 무료로 대여해준다는 것.
그 와중에 뷰캐넌은 9백25만달러(약 1백20억원)를 수임료로 받아갔다.
지난 99년 집단소송 합의금으로 21억달러를 내놓아야 했던 일본 도시바의 케이스는 차라리 '변호사 폭력'에 가깝다.
웨인 리우라는 텍사스주의 거물 변호사는 도시바가 판매한 랩탑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결함을 문제삼고 나왔다.
도시바는 별 것 아니라 생각하고 무시하려 했으나 정치적인 영향력이 컸던 리우 변호사는 터무니없는 논리로 밀어붙였고 그의 친구인 태드 하트필드 담당 판사는 합의를 종용했다.
결국 소비자들은 도시바의 새 랩탑을 사면서 4백25달러씩 보상받았고 리우 변호사는 무려 1억4천7백만달러(약 1천9백억원)의 수임료를 챙겼다.
이 리우 변호사가 최근 하트필드 판사가 있는 법원에 컴팩컴퓨터를 상대로 비슷한 성격의 집단소송을 내자 각계의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하트필드 판사는 소송을 기각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ERA)는 집단소송에서 변호사들의 수임료가 보상액의 평균 3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의 경우 평균 보상액이 1천5백40만달러인 만큼 수임료가 건당 4백62만달러(약 60억원)에 달했다는 계산이다.
이같은 고수임료가 바로 소송 남발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다.
뉴욕 컬럼비아대학 로스쿨에서 기업 소송을 담당하는 존 코피 교수는 "집단소송의 목적이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배상에 있지 않고 변호사들의 수임료에 있다"고 꼬집으며 이를 '기업형 소송(enterpreneurial litigation)'으로 부르고 있다.
외국에 비해 고소 고발 건수가 많고 소송 자체가 범죄시되는 문화인 우리 풍토에서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할 때 가장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