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벤처인들을 만나면 완전히 두 편으로 갈라진다. 돈을 가진 벤처투자자들은 아무리 살펴봐도 투자할 곳이 없다고 얘기한다. 반면 벤처기업인들은 돈의 씨가 말라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양측 가운데 그래도 벤처기업인측의 목청이 한층 더 높다. 이들은 벤처업계에 몰리던 그 많던 돈이 다 어디로 갔느냐고 아우성친다. 지난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2차 중소기업 금융지원위원회의 보고를 통해 벤처기업인들의 이런 목소리가 거짓이 아니라는 게 확실하게 입증됐다. 왜냐하면 올해 정부가 중소·벤처기업에 적극 지원키로 한 정책자금인 경영안정자금과 벤처창업자금이 상반기 중 이미 동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 한햇동안 경영안정자금 3천억원,벤처창업자금 2천2백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 2월5일부터 신청받은 이 자금은 5개월만에 완전히 소진되고 말았다. 지난 6월말 현재 경영안정자금은 3천5백4억원이 지원되고 벤처자금은 2천2백73억원이 나갔다. 결국 하반기에 이 부문에 지원할 돈이 바닥난 셈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겨났을까. 여기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한국의 벤처기업인들은 남의 돈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기업인이라면 어느 정도 자기자본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원칙인데도 자기 돈보다 정부 돈이나 은행 돈으로 장사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돈을 마구 끌어댔기 때문일 수 있다. 오죽하면 상반기 중 연간자금이 다 나가버렸을까. 둘째는 당초부터 정부가 정책자금 지원규모를 너무 적게 책정했기 때문일 수 있다. 벤처 창업의욕이 이렇게 강한데도 정부가 명목만 내세웠을 뿐 돈에 관한 한 뒷받침을 충분히 못해줬기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자,여기서 우리가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어느 누가 잘못을 저질렀느냐가 결코 아니다. 타인 자본으로라도 벤처 창업을 하겠다는 의욕은 바람직한 것일 수 있고 하반기 자금까지 앞당겨 지원한 중소기업청의 판단도 적절한 것일 수 있다. 바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중소기업인들의 경영의욕과 벤처인들의 창업의욕을 꺾어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추가 예산을 확보해야 하고 산업은행 중소기업진흥공단 신용보증기관 등이 협의,중소기업 자산유동화증권(CBO)을 거듭 발행해 보다 빨리 중소기업에 돈줄을 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실 벤처 붐이 일어났을 때 몰리던 그 돈의 절반만 벤처에 투자돼도 이제 알짜 벤처들은 급성장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알짜 벤처에 더욱 과감히 투자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