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로 인해 경제 성장이 멈췄거나 후퇴한 사례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제 세계화 흐름은 피할 수 없는 대세다. 다자간 논의는 물론 지역협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한덕수 OECD 대표부 대사) "WTO(세계무역기구)는 기본적으로 다자통상체제를 추구하되 지역무역협정(RTA) 역시 세계화의 한 추세로 인정하고 있다. 90년대 들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지역협정을 빼놓고 세계 통상질서를 얘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은 지역협정에서 완전 소외돼 있다"(정의용 주제네바대표부 대사) 세계 통상질서를 새로 짜고 있는 WTO,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의 국제기구에서 만난 국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세계화와 지역화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통상정책'을 강조했다. 이들은 WTO 다자통상체제에 참여하는 것 만으로는 급변하는 세계 통상질서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선진국들이 모두 지역별 경제 블록화를 통해 역내 국가들과의 교역을 늘리고 있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이들 '경제블록'에 편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블록국가들이 역외국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높이 쌓아올리고 있어서다. 수출과 투자의 기회를 봉쇄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블록체제 편입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한국의 현실은 답답하다. 자유시장경제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전세계 국가들 가운데 아직껏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지역협정을 단 한개도 맺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나마 일본은 싱가포르와 FTA 체결을 위한 협상이 급진전,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한.칠레 FTA 협상은 현재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첫 FTA라는 상징적 의미 외에 미주 시장 진출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아래 적극 협상에 나섰지만 농산물 관세 철폐를 둘러싼 양측간 이견 때문에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미국이 캐나다·멕시코와의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2005년 말까지 미주대륙 전역으로 확대, FTAA(미주자유무역지대)를 건설키로 한 만큼 한.칠레 FTA 체결의 의미는 더욱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일본과의 투자협정(BIT) 협상 역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기업투자를 원활히 하기 위한 협정인 BIT는 FTA보다 낮은 단계의 협력협정이지만 이 조차도 국내 여건문제로 인해 체결이 늦춰지고 있는 것. 미국과의 BIT는 스크린쿼터 문제(국산영화 의무상영제)가, 일본과의 BIT는 한국의 격렬한 노사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해 결론없이 지루한 협상만 계속되고 있다. 박번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세계화와 지역화' 보고서를 통해 "세계화가 초래하는 교란에 대응하기 위해선 지역간 협력이 필요하다"며 "우선 동아시아 각국과 무역 투자 금융 등 다양한 차원에서 협력체제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