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은 미국이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에서 탈퇴할 경우 다탄두 전략 핵무기를 증강하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뉴욕타임스가 20일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군비경쟁으로의 초대'라는 제목의 이날짜 사설에서 푸틴 대통령이 "ABM 협정 탈퇴에 맞선 대응으로 지난 93년 미국과 체결한 핵무기 감축조약을 밀어내고 다탄두 핵미사일을 증강할 수 있다"고 경고한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아무리 자금원이 부족한 러시아라 하더라도 수백개의 다탄두 핵미사일을 보강할 여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의 경고를 그냥 넘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ABM 협정을 무작정 버릴 것이 아니라 이를 수정하고 대체할 수 있는 점진적인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만일 미-러 양국이 기존 군비통제의 틀을 마구잡이로 깨기 시작한다면 결국 미국의 안보도 지금보다 훨씬 더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특히 다탄두 핵미사일은 최대 10여곳의 서로 다른 지역에 강력한 핵폭탄을 동시다발로 투하할 수 있는 지상 기반의 전략 핵무기로, 냉전체제하 옛 소련에서 개발된무기 중 가장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신문은 경고했다. 전임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전략 핵무기 감축협정 체결이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평가받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 또한 닉슨 행정부 시절인 지난 72년 ABM 협정이 잉태된 것도 결국 다탄두 핵무기의 위협 가능성 때문이다. 1960년대에 처음 개발되기 시작한 다탄두 핵무기는 당시 제1세대의 미사일 방어체제를 쉽게 무너뜨릴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는데, 바로 이점이 닉슨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ABM 협정에 서명토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미-소 양국은 ABM이라는 우산하에서 공격적 핵무기의 상호 감축을 마음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뉴욕타임스는 평가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부시 행정부는 미사일 방어와 핵 문제를 놓고 러시아와 어떻게협상에 임할 것인가. 뉴욕타임스는 그 해법의 하나로 향후 몇 년 동안은 ABM 협정의 골격을 무너뜨리지 않고 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을 위한 시험을 실시해본 뒤 협정 조항을 점진적으로수정해 나가는 방향을 설정할 것을 제안했다. 부시 행정부는 냉전종식과 동시에 이라크, 이란,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의 위협이 출현해 미사일 방어 체제로의 신속한 이동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이보다 더 위험한 새 군비경쟁을 막기 위해서는 미사일 방어 실험과 ABM 협정은당분간 함께 공존하면서 가야 한다는 논리인 셈이다. 그리고 이 기간 미사일 방어 추진을 위한 광범위한 실험이 성공한다면 러시아와ABM 협정을 대체할 새로운 조약이나 협정을 모색하는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뉴욕=연합뉴스) 엄남석특파원 eomn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