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재계, 顧問제도 '메스' 가한다 .. 닛산 등 잇달아 축소.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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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결산을 끝내고 주총시즌을 눈 앞에 둔 일본 재계에 성역처럼 인식돼왔던 관행을 깨부수는 인사혁명이 소리없이 일어나고 있다.
현역에서 물러난 고위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고문제도에 메스를 가하는 기업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의 고문제도는 지금까지 다목적 카드로 활용돼 왔다.
우선 종신고용의 연장선 상에서 회사를 위해 일하다 물러난 임원들을 위로하는 한편 당분간 뒤를 보살펴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원로들의 풍부한 경험과 아이디어를 경영에 참고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중 하나다.
뛰어난 기술과 식견을 지닌 퇴직 임원들이 경쟁 회사로 스카우트되는 것을 방지하는 안전판 역할도 주요 효과중 하나로 꼽혀 왔다.
그러나 자동차 철강 전기 등 일본 산업계 주력업종의 초일류회사들은 최근 일제히 고문제도를 폐지하거나 인원 수를 대폭 줄이는 수술을 진행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투입비용에 비해 효과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원로들의 경륜을 살린다는 취지는 옳지만 실제 도움이 될만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는게 기업들의 자체 판단이다.
여기에는 경기침체로 문을 닫는 공장이 늘어나고 근로자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퇴직 선배들이라고 마냥 전관예우해 줄 수는 없다는 사정 또한 배경으로 깔려 있다.
효율지상주의로 무장한 서구기업들과의 싸움에서 살아 남으려면 누수비용을 한푼이라도 줄여야 된다는 기업들의 마인드 변화도 고문제도에 칼을 들게 만들었다.
닛산자동차는 작년에 이미 고문제도를 폐지했으며 마쓰시타전기도 상근고문제를 없앴다.
자동차 리콜 은폐 사고의 후유증으로 대규모 적자의 늪에 빠진 미쓰비시 자동차는 6월 말에 없애기로 했던 고문제도를 4월로 앞당겨 폐지했다.
이 회사는 60명의 고문을 두고 1인당 연간 수백만엔씩의 고문료를 지급해 왔으나 회사가 위기에 봉착하자 경비절감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고문제를 없애기로 한 것이다.
소노베 다카시 사장은 "공장폐쇄로 9천5백명이나 되는 직원이 일자리를 잃게 된 판에 고문 자리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며 "회사경영에 조언을 얻는다지만 그런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고문제도 수술작업은 본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일류 대기업들이 이미지와 체면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자회사나 관계회사도 모두 대상에 올려 놓고 있다.
스미토모금속 그룹은 주력사뿐 아니라 그룹 계열사의 모든 고문제도를 6월 말부터 완전히 없애기로 확정했다.
이 그룹의 고문은 현재 특별고문을 포함, 약 1백30명에 이르고 있으며 이중 절반이 주력사의 임원을 지낸 후 계열사로 옮겨와 고위직을 거치고 고문 대접을 받고 있는 중이다.
가와사키 중공업은 지난 4월 사내 컴퍼니제를 도입한데 이어 고문제도를 수술, 작년 말 60명에 달했던 고문 수를 26명으로 대폭 줄여 버렸다.
당사자 등 사내 저항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쓰비시 자동차의 경우 몇명이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회사는 소노베 사장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명단을 공개하겠다"며 으름장 섞인 호소로 목표를 관철시켰다.
고문제도는 손톱만큼의 수익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에 경비절감을 위한 빅 카드로 인식되고 있다.
퇴직 선배들의 비난과 욕을 감수하면서 고문 리스트럭처링에 앞장섰던 한 사장은 "잘해야 한햇동안 수천만엔 밖에 이익을 못내는 중소기업에서 고문료로 억대를 지불한다면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일도 없는 사람들이 회사에 나와 있으면 멀쩡히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에도 영향이 갑니다"
다임러 크라이슬러사에서 미쓰비시 자동차로 파견나온 롤프 에크로드 부사장이 일본의 고문제도를 이해할 수 없다며 털어놓은 고백이다.
<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