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900년 전인 서기 1101년 고려 숙종(재위 1096-1105년) 때 왕실도서관에 소장돼 있던 고문헌 5종이 일본에서 확인됐다. 이런 사실은 왕조가 바뀌면서 조선 왕실도서관에 이관돼 있다가 일본으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서(古書) 5종에서 고려 숙종 때 왕실도서관 소장품이었음을밝혀 주는 도장(인장)을 확인함으로써 드러났다. 고서연구가인 박철상씨는 옛 중국 백과사전인 「통전」(通典)과 중국 성씨의 유래를 설명한 「성해」(姓解)를 비롯한 일본 소장 고문헌 5종이 원래 고려왕실 소장본임을 증명하는 도장을 각각 찾아내고 그 결과를 최근 발간된 한국학 관련 계간 학술지인 「문헌과 해석」 2001년 여름호(통권 15)를 통해 공개했다. 나머지 3종의 문헌은 어떤 학설에 대한 주석서로 생각되는 「중설주」(中說注)와 역사책으로 짐작되는 「중광회사」(重廣會史) 및 한문 자전류로 추정되는 「신조입전설문정자」(新雕入篆說文正字)이다. 이들 도서에는 '고려국 14엽 신사세 어장서 대송건중정국 원년 대요건통 원년'(高麗國 十四葉 辛巳歲 御藏書 大宋建中靖國 元年 大遼乾通 元年)이나 '고려국장서'(高麗國藏書)라는 직인이 찍혀 있다. 이들 직인에 나타난 중국 송나라 연호 '건중정국 원년'과 요나라 연호 '건통원년'은 고려로는 숙종 재위 6년째인 서기 1101년에 해당하며 '고려국장서'라는 말은고려 왕실도서관 장서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런 직인이 찍힌 이들 도서는 원래는 고려 왕실도서관 소장품이었음을알려 주고 있다. 그 근거로 박씨는 「조선왕조실록」중 세조 9년 5월 30일자 대목에등장하는 양성지의 말을 들고 있다. 여기서 양성지는 "고려 왕조에서는 숙종 때에 이르러 비로소 경적(經籍)들을 수장하고 도서를 찍어 두었는데, 그중 하나에는 '고려국 14엽 신사세 어장서 대송건중정국 원년 대요건통 9년'이라 하고 다른 하나에는 '고려국 어장서'(御藏書)라 했습니다"라면서 "지금 (조선)왕실에 수장된 서책 만권은 대부분이 그 당시 소장품이 전해 오는 것들입니다"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실록 기록과 이번에 「통전」 등지의 문헌에서 확인된 도장 사이에는 몇 군데 차이가 있다. 예컨대 실록에서는 '건통 9년'이라 했으나 이는 '건통 원년'의 잘못임이 밝혀졌다. 이들 문헌은 모두 중국 북송에서 출판된 것을 고려에서 수입해 왕실도서관에 수장했으며 실록에 조선 세종 때 왕실도서에 찍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경연'(經筵)이라는 글자가 있는데다, 양성지의 말로 미뤄 적어도 세종 혹은 세조 때까지는 조선왕실도서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일본 황실도서관격인 서릉부(書陵部) 등지에 소장된 이들 문헌이 유출된시기에 대해 박씨는 임진왜란 때 약탈해 간 우리 동활자와 서적을 주로 수장했던 '양안원'(養安院)이라는 직인이 확인되는 점으로 미뤄 임란 무렵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문헌과 해석」 편집인인 안대회 연세대 강사는 "이번 성과로 우리나라 도서관 직인의 역사는 900년을 헤아리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