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계 증시 지배력 ]

대한투신 주식운용1팀 서정호 부장.

1조3천억원의 자금을 굴리는 펀드매니저인 서 부장은 모건스탠리증권 서울지점의 브로커(증권회사 직원으로 위탁수수료를 받고 거래를 성사시켜 주는 사람)로부터 전화를 받고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그를 통해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월가 최신 정보를 제공받는다.

서 부장은 "외국계 증권사 브로커들은 기관투자가들에 제공할 따끈따끈한 투자정보를 우선 풍부하게 갖고 있고 적극적으로 서비스한다.

그런 면에서 국내 증권사 브로커들은 처진다.

외국계에 비해 아무래도 줄게 많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 정보제공업체 등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국내 증권사에서 나오는 정보는 대부분 곧바로 시장에 퍼지기 때문에 국내 증권사 브로커들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을 수밖에 없다.

서 부장은 회사 내 다른 펀드매니저들과 함께 매달 국내외 증권사들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어떤 종목을 사고 어떤 종목을 팔 것인지, 언제 사고 언제 팔 것인지를 판단하는데 필요한 애널리스트들의 각종 리포트와 투자정보의 질을 기준으로 증권사별로 점수를 매기고 있다.

서 부장은 "갈수록 외국계 증권사들이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외국인의 투자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기관투자가들은 외국계 증권사를 통한 주식거래를 늘려갈 수밖에 없다"며 "투신사들의 경우 전체 주식거래의 30∼40% 정도를 외국계 증권사에 맡기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계 증권사들은 개인 투자자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메릴린치 한국지점은 거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자산관리(랩 어카운트) 업무를 시작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메릴린치측은 5억원 이상을 맡기는 거액 자산가만을 상대로 돈을 굴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공개적인 광고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이미 서울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져 문의 전화가 밀려들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메릴린치라는 세계적인 브랜드 파워와 오랜 금융 노하우 때문에 여윳돈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메릴린치 한국지점은 개인 상대 자산관리 업무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관련 인력을 확보하는 한편 다음달중에 파이낸스빌딩 2개층을 임대, 사무실을 확장 이전할 계획이다.

◇ 외국계 지배력 갈수록 커진다 ="지난 92년 증시 개방 이후 외국인은 35조원을 순매수했지만 국내 기관투자가와 개인들은 각각 19조원,16조원을 순매도했습니다"(신영증권 리서치센터 장득수 부장)

이에따라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한 국내 주식의 시가총액 비중은 97년말 14.6%에서 지난해 말엔 30.1%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전체 주식의 40% 정도가 경영권 확보를 위해 묶여 있다고 보면 외국인들은 실제적으로 거래되는 주식의 절반 이상을 가진 셈"이라며 "이는 외국인들의 시장 지배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난 4월말 현재 국내 증시에서 활동중인 증권회사는 모두 64개사.이 가운데 19개가 외국계 증권사의 국내 지점이다.

또 굿모닝 리젠트 일은 서울 KGI 한누리 메리츠 살로먼스미스바니 E*트레이드 도이치증권 등은 외국인이 주인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우증권 이종우 투자전략팀장은 "주가 형성의 주도권은 완전히 외국인 손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 토종 증권사 수익구조 다변화해야 =외국계 증권사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국내 증권사들은 변신을 요구받고 있다.

삼성증권 이남우 상무는 "외국사들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고급 투자정보 제공을 무기로 기관투자가 대상의 도매 부문을 장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굿모닝투자신탁운용 강창희 상임고문은 "지금까지 국내 증권사들은 소매에서 수수료를 벌어 도매에서 출혈경쟁을 해왔는데 이제는 소매에서조차 온라인 주식거래의 급증 등으로 수수료 수익이 예전같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국내 증권사들은 단순 거래 중개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 영업방식에서 벗어나 종합 투자은행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나경제연구소 조우성 연구원은 "전체 수익의 40% 이상을 거래 수수료 수입에 의존해온 국내 증권사들은 자산관리 기업인수합병(M&A) 증권종합계좌(CMA) 등 투자은행 업무를 강화, 수익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획취재부 오춘호.조일훈.장경영 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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