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과 잡동사니가 뒤섞여 있는 모양은 차마 볼수가 없습니다. 책상머리가 어지러운 것도 정신상태가 맑지 못하다는 뜻이겠지요"

김승호(69) 보령제약 회장은 회사를 한바퀴 돌 때마다 약상자를 쓰레기더미 옆에 놓아 두는 사원에게는 호통을 친다.

또 책상위가 지저분한 직원에게는 정리정돈을 잘하면 보기도 좋고 업무능률도 오르지 않느냐며 손수 책상을 정리해 준다.

44년간 제약업으로 한 우물을 파온 김 회장은 최근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선정하는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했다.

성실 신뢰 도전의 정신으로 보령의 오늘이 있게 한 그의 경영성과에 대해 재계 학계 언론계가 내린 평가다.

김 회장은 이번 수상을 "그동안의 약업인생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구상에 매진하라는 채찍질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 사업으로 그는 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

"국가백년대계가 교육인데 유아들을 위한 학습교재가 체계화돼 있지 않습니다. 외국의 좋은 교재와 교육프로그램을 우리 실정에 맞게 개선하고 체계정립에 나선다면 수익성 높고 폭발적인 호응을 얻는 사업이 될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김 회장은 지난 3월 일본 메이토사와 합작으로 보령메이토를 설립했다.

김 회장은 중.고등학교 시절 친척이 운영하는 종로5가의 대형 약국 2층에서 기거하며 약국의 잔일을 거들었다.

한국전쟁이 나고 육군 공병단 중위로 제대한 김 회장은 이 약국에서 수습생활을 하다가 있는 돈을 다 털어 "보령약국"을 세웠다.

이렇게 탄생한 보령약국은 "값싸고 친철하고 없는 약이 없는 약국"으로 명성을 쌓아 갔다.

보령약국은 "약국의 근대화"에 적잖은 역할을 했다.

팔리는 의약품의 품목과 수량을 기재하는 "전표제도"를 도입했다.

바코드를 이용한 판매시점관리(POS)의 원시적 형태라 할만했다.

지금의 택배나 오토바이 퀵서비스에 견줄만한 "자전거부대"도 편성했다.

또 제품을 고객이 직접 보고 선택할수 있는 "오픈진열대"를 창안해 호응을 얻었다.

"고객만족경영"에서 우러난 아이디어들이었다.

날로 번창하는 약국에 만족할 법도 했지만 김 회장은 약사인 동생에게 약국을 넘겨주고 손을 털었다.

경제부흥운동이 한창인 지난 63년 그는 부도 직전의 동영제약을 인수했다.

64년 연초부터 아스피린 APC감기약 등 초보적인 형태의 약을 만들었다.

67년에는 서울 성수동에 공장을 새로 짓고 본격적인 제약인생을 시작했다.

한물간 제품이나 초보적인 항생제를 만드는 것으로 경험을 쌓은 그는 선진기술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2년여의 끈질긴 설득 끝에 일본으로부터 거담진해 생약제제인 "용각산"을 들여 왔다.

용각산은 재미있는 광고문구와 단일품목으로는 당대 최고의 광고비를 쏟아부은 끝에 공전의 히트를 쳤다.

70년대 들어서는 생약제제에서 벗어나 현대화된 신약생산에 나섰다.

69년 미국과 유럽의 선진제약사를 방문하고 돌아오자 김 회장은 학술부를 세우고 미국의 브리스톨마이어스와 제휴계약을 맺었다.

이어 74년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안양에 연건평 2천4백여평에 달하는 공장을 준공했다.

이후 "헤파리겐" "바파린" "겔포스" 같은 스테디셀러들이 줄지어 탄생했다.

이중에서도 겔포스는 보령제약의 간판제품이 돼있다.

"70년대 초반에는 위장병이 가장 흔한 질환이었습니다. 약효가 신속하고 휴대가 간편해 "주머니속의 액체 위장약"이란 이미지로 인기를 끌어냈죠"

겔포스는 연간 1백53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작년에는 마그네슘성분을 보완한 "겔포스-M"을 새로 발매해 후발제품들을 큰 격차로 앞서고 있다.

78년에는 독자기술로 항생물질인 "암피실린"을 합성해 냄으로써 원료국산화의 첫길을 열었다.

이를 필두로 백신 항암제 고혈압치료제 등 바이오의약품을 자체기술로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92년에는 세계 세번째로 항암제 "독소루비신"을 개발했고 작년에는 50억원을 들여 항암제 전용 발효시설을 대폭 증설, 생산량을 8배 이상 늘렸다.

이 발효공정중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물질은 반합성법을 이용해 새로운 항암제로 개발중인데 금년말 연구가 끝나 내년 초부터 대량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항암제는 모두 독일의 헬름사를 통해 전량 수출될 예정이며 금년에 1백억원의 매출이 전망되고 있다.

이밖에 미생물을 이용한 폐수처리균주, 세파계항생제 중간체의 생산균주 등에도 연구를 집중해 좋은 결과가 기대되고 있다.

김 회장은 경영다각화에서도 커다란 성과를 올렸다.

지난 79년 창업한 유아용품 전문업체인 "보령메디앙스"(옛 보령장업)는 연간 5백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임상의학적 기초를 깔고 젖병 하나, 유아복 한벌도 다른 회사보다 과학적으로 만든 것이 주효했다.

이어 만들어진 백신전문업체 보령신약과 헬스케어를 표방한 인터넷업체인 BR네트컴도 견실히 성장해 나가고 있다.

김 회장은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85년부터 오지에서 헌신적인 인술을 펼치고 있는 의사들을 위해 "보령의료봉사상"을 시행하고 있고 말기 신장환자를 위해 수익성은 없지만 신장투석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장학사업과 산모유아를 위한 교육캠페인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또 종균협회회장 생명공학연구조합이사장 등을 맡아오면서 바이오산업 발전에도 기여해 오고 있다.

앞으로는 환경친화적 국토개발사업의 씽크탱크로서 연구지원사업을 해볼 작정이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