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원의 연봉을 포기하고 귀국했는데 잔심부름만 하다 그만두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담은 보고서를 내면 담당 사무관이 가로채 자신의 공적인양 상부에 올립니다. 당신은 어차피 그만둘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죠"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에서 통상전문관으로 일하다 그만둔 K모 박사.

국제기구와 연구소 등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경험을 살려 통상 경쟁력에 일조하겠다던 그의 꿈은 이렇게 간단히 무산됐다.

"학연 지연으로 연결된 고시 출신들끼리 형님아우하는 분위기 속에서 따돌림은 차라리 자연스런 일"이었다는게 그의 회고라면 회고다.

"98년 6월 이후 2년6개월 동안 13명의 통상 전문관들이 짧게는 5개월 길어봤자 15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기업체 대학 연구소 등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개방형(1∼3급)이든 계약직(4급 이하)이든 공무원 직위는 이처럼 더 이상 매력적인 자리가 아니다.

낮은 보수도 견디기 힘들지만 보람은 더욱 찾을 수 없다.

보수와 보람은 또 그렇다 하더라도 폐쇄적인 공직사회 속에서 당장 하루하루를 버티기조차 힘들다는 것이 한때 공무원이 되었던 민간인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개방.계약직 공무원 임용제도가 겉돌고 있는 데는 무엇보다 ''고시 몇 회''하는 식의 패거리 문화가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민간인 계약직들은 부서내 술자리에서조차 철저히 따돌림을 당한다.

이너서클(inner circle)은 학교 지연 등으로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너서클에 끼지 못하면 조직내 외톨이가 되고 만다.

민간인 출신이니 더할수 밖에 없다.

통상교섭본부에서 일하다 그만둔 A모씨는 "상층부에까지 자신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조직의 폐쇄성에 놀랐다"고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결정은 어디에선지 따로 결정된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는 것도 그의 소중한 경험이다.

그는 "때늦은 왕따 경험을 한 셈"이라며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개방형·계약직 공무원제도를 입안했던 공무원들이 처음부터 민간인 지원자를 교묘하게 배척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오석홍 서울대 교수는 "공직 근무 경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실종된 상태에서 공직 인센티브가 너무도 빈약했다"고 설명한다.

개방형 또는 계약직 공무원들에게 책정된 낮은 보수는 능력있는 민간인이 공직사회로 진출하는 길을 막고 있다.

실.국장 개방형은 4천만∼6천만원 사이에서 연봉이 결정된다.

연금도 없고 공무원들에게 보장되는 ''퇴직후 자리''도 보장되지 않는다.

경력마다 차이가 심하지만 박사학위를 받고 바로 채용된 경우 2천만원이 조금 넘는 대우를 받는다.

10년 이상 전문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변호사나 회계사도 4천4백만원을 넘기 힘들다.

1억원대의 연봉을 받던 사람들이 개방형.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려면 특별한 ''봉사정신''이 필요한 정도다.

기획예산처에서 15개월간 팀장으로 근무했던 김한주 변호사는 1억원 이상이던 연봉이 3천7백만원으로 삭감되는 것을 감수하고 공직사회에 들어갔었다.

그는 "장기간 근무하면서 점차 낮은 연봉이 부담스러워졌다"고 말했다.

결국 98년 이후 모두 합쳐 14명의 기획예산처 계약직 직원들이 자리를 떠났다.

업무 분장에서도 차별이 존재한다.

통상교섭본부는 지난 98년 ''통상전문관''이란 이름으로 박사 변호사 대학교수 등 12명을 뽑았었다.

이들은 모두 한직인 ''통상법률지원팀''으로 배치됐고 지금은 4명만 남아있다.

왕따 현상에는 직급과 호칭 문제도 겹쳐있다.

변호사 대학교수 국제기구 연구원 등 ''Director''급으로 일했던 통상전문관에게 주어진 영문직급은 한참이나 격이 떨어지는 ''Specialist''였다.

외교통상부는 최근에야 이들의 명칭을 ''Counsellor''로 올려줬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