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진 <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

자동차 산업은 70년대 이후 한국자본주의를 받쳐온 지주산업의 하나이다.

고용 생산 수출 등 제반 경제지표에서 자동차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증가 추세에 있으며 여타 관련 산업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력도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 해에는 3백만 대 이상을 제조하여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전세계에서 자국의 실력으로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8개국뿐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았던 국가 중 오늘날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독자모델을 보유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동남아시아와 중남미의 여러 국가에서는 자동차산업이 외국 자본과 기술에 종속돼 있다.

반면 자체기술과 고유상표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한국 자동차산업은 일본에 이어 강력한 수출지향적 자동차산업 구조를 갖게 됐다.

세계 자동차 산업은 뚜렷한 비전을 가진 소수의 리더에 의해 개척돼 왔다.

자동차 산업의 성패는 확신을 가진 장기 투자 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그의 추진력과 긍정적인 사고 그리고 근검절약하는 생활로만 일반에 알려져 있으나 현대자동차의 경영사(經營史)를 보면 그의 뛰어난 경영 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에 헨리 포드가 있었고 일본에 도요다 기이치로가 있었듯 한국에는 정 명예회장이 있었던 것이다.

정 명예회장의 현대차 경영철학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그는 고유기술 개발을 매우 중시했다.

현대차는 1973년 포드 자동차와 협력 관계를 청산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독자 브랜드인 포니를 개발했다.

''다국적기업은 우리에게 수출길을 열어주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의 진정한 발전을 돕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협소한 국내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우리 브랜드의 개발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국내 경쟁업체들이 외국 엔진을 탑재해 비싼 로열티를 주고 있을 때 알파엔진을 개발했다.

다소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기술 개발''을 경영원칙으로 삼아 기술을 모든 것에 우선시한 것이다.

지금에 와서 볼 때 이는 매우 적절한 판단이었다.

둘째 그는 글로벌시대를 개척했다.

아직 해외 투자가 일천했던 1985년 현대차는 미국에 현지판매법인을 설립하고 미국 전역에 판매망을 구축했다.

그리고 한국회사로서는 드물게 미국 3대 방송국에 ''Cars that make Sense(합리적인 차)''라는 캐치프레이즈로 TV광고를 했다.

엑셀은 미국에서 1987년 26만대가 판매돼 수입소형차 판매 1위 브랜드가 됐다.

이후에 현대차는 후속모델 부재 및 품질 문제로 미국시장에서 시련을 겪게 되지만 꾸준히 시장을 개척한 결과 작년에는 미국 승용차 시장의 5%를 점유하는 등 미국 시장에서 판매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이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정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에 힘입은 것이다.

셋째 그는 도덕적 경영을 실천했다.

자사의 구매부서 직원이 고의로 납품업체에 폐를 끼칠 경우 반드시 징계를 했다.

현대차 최고 경영층은 직원들에게 ''업체에 나가 설렁탕 한 그릇이라도 신세지는 사람은 엄벌할 것''이라고 말할 만큼 회사 직원의 도덕성을 강조했다.

최근 경영학계에서 가장 중시하는 개념이 ''신뢰''인데 정 명예회장은 일찍이 협력업체와 신뢰관계를 구축했고 이러한 신뢰 구축이 현대차로 하여금 가장 효율적인 구매체계를 갖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처럼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 경영을 통해 바람직한 기업가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는 헨리 포드,도요다 기이치로와 더불어 이 시대의 진정한 인더스트리얼리스트(industrialist·산업자본가)로 불리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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