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스토리] 조영광 <엠피씨 사장>..수많은 좌절속 꽃피운 업계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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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수요일 저녁 8시 방이동의 한 삼결살집.엠피씨의 조영광(43)사장은 직원들과 한잔 걸치고 있었다.
조 사장은 일주일에 한번은 직원들과 회식을 한다.
지난날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한 동료들이 너무 고마워서다.
엠피씨는 91년 창업이래 콜센터를 주축으로 고객관계관리(CRM) 전문 서비스분야를 개척한 벤처기업이다.
고객센터 구축에 필요한 다양한 CRM 솔루션과 CRM 대행서비스가 주 사업이다.
엠피씨가 콜센터 아웃소싱 부문에서 업계 대표로 우뚝섰지만 정상에 오르기까지 시련이 많았다.
"어려울 때 마다 희망을 잃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 사장이 살아오면서 뼈져리게 느낀 점이다.
그는 실패를 여러번 겪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실패 속에서 희망을 찾았고 결국 그 뜻을 이뤘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그는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MBA를 마쳤다.
88년 귀국한 뒤 피혁의류 무역업을 하면서 큰 돈을 벌어 한때 잘나간다는 소리도 들었다.
수출에서 힘을 얻은 조 사장은 내수시장에 뛰어들었다.
이게 화근이었다.
여성의류업체 논노에 납품했다가 논노의 부도로 10억원이 날아갔다.
공장을 폐쇄하고 사업을 정리했다.
그는 이때도 남들과 달랐다.
내몰라라하고 도망가는 여느 경영인이 아니었다.
자신이 살고있던 아파트까지 처분해 빚을 정리했다.
그를 아낀 친구가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청마인터내셔널의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그는 밤잠을 설쳐가며 일했다.
그러던 95년말 CRM기업인 엠피씨에 들어갔다.
당시 사장이던 이영규 현 부사장이 그의 재능을 발휘하라며 데려온 것이다.
조 사장도 엠피씨의 사업성이 높음을 간파하고 이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사업방향은 맞았으나 국내 기업들의 준비가 안돼 있었다.
콜센터는 있으나 이를 찾는 고객이 없던 것이다.
결국 96년에 7억원의 적자를 내며 자본잠식에 이르렀다.
98년 5월 서울 삼성동의 본사를 폐쇄하고 콜센터가 있는 방이동으로 합쳤다.
본격적인 허리졸라매기가 시작됐다.
임직원 10%가 무급휴직을 했고 급여 10%를 자진반납했다.
그는 "아무리 회사 경영이 나빠져도 해고는 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엠피씨는 콜센터가 비어있을 때에도 콜센터 상담원교육은 계속 했다.
미래의 자원이기 때문이다.
이는 경기가 좋아졌을 때 숙련된 휴직중이던 직원들을 바로 불러들여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98년 하반기부터 기업들이 비용절감차원에서 자체 콜센터를 없애고 엠피씨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99년 1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고 지난해에는 12억원의 이익을 기록했다.
조 사장은 "CRM 선두주자로 모험 대가를 톡톡히 치른 다음에야 리딩회사로 부상했다"며 "정보기술연구소와 마케팅연구소를 기반으로 차세대 CRM 솔루션을 개발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에는 엠피씨의 기업가치를 높게 본 일본의 IBJ(일본흥업은행)와 도쿄화재가 출자해서 만든 HTCL펀드가 한국의 코아구조조정기금과 함께 6백만달러를 액면가 기준 22배수로 투자했다.
조 사장은 "10년간 한 우물만 팠던 결실을 지금 거두고 있다"며 "CRM 분야에서 세계 일류 회사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당당히 밝혔다.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
조 사장은 일주일에 한번은 직원들과 회식을 한다.
지난날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한 동료들이 너무 고마워서다.
엠피씨는 91년 창업이래 콜센터를 주축으로 고객관계관리(CRM) 전문 서비스분야를 개척한 벤처기업이다.
고객센터 구축에 필요한 다양한 CRM 솔루션과 CRM 대행서비스가 주 사업이다.
엠피씨가 콜센터 아웃소싱 부문에서 업계 대표로 우뚝섰지만 정상에 오르기까지 시련이 많았다.
"어려울 때 마다 희망을 잃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 사장이 살아오면서 뼈져리게 느낀 점이다.
그는 실패를 여러번 겪었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실패 속에서 희망을 찾았고 결국 그 뜻을 이뤘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그는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MBA를 마쳤다.
88년 귀국한 뒤 피혁의류 무역업을 하면서 큰 돈을 벌어 한때 잘나간다는 소리도 들었다.
수출에서 힘을 얻은 조 사장은 내수시장에 뛰어들었다.
이게 화근이었다.
여성의류업체 논노에 납품했다가 논노의 부도로 10억원이 날아갔다.
공장을 폐쇄하고 사업을 정리했다.
그는 이때도 남들과 달랐다.
내몰라라하고 도망가는 여느 경영인이 아니었다.
자신이 살고있던 아파트까지 처분해 빚을 정리했다.
그를 아낀 친구가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청마인터내셔널의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그는 밤잠을 설쳐가며 일했다.
그러던 95년말 CRM기업인 엠피씨에 들어갔다.
당시 사장이던 이영규 현 부사장이 그의 재능을 발휘하라며 데려온 것이다.
조 사장도 엠피씨의 사업성이 높음을 간파하고 이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사업방향은 맞았으나 국내 기업들의 준비가 안돼 있었다.
콜센터는 있으나 이를 찾는 고객이 없던 것이다.
결국 96년에 7억원의 적자를 내며 자본잠식에 이르렀다.
98년 5월 서울 삼성동의 본사를 폐쇄하고 콜센터가 있는 방이동으로 합쳤다.
본격적인 허리졸라매기가 시작됐다.
임직원 10%가 무급휴직을 했고 급여 10%를 자진반납했다.
그는 "아무리 회사 경영이 나빠져도 해고는 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엠피씨는 콜센터가 비어있을 때에도 콜센터 상담원교육은 계속 했다.
미래의 자원이기 때문이다.
이는 경기가 좋아졌을 때 숙련된 휴직중이던 직원들을 바로 불러들여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98년 하반기부터 기업들이 비용절감차원에서 자체 콜센터를 없애고 엠피씨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99년 1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고 지난해에는 12억원의 이익을 기록했다.
조 사장은 "CRM 선두주자로 모험 대가를 톡톡히 치른 다음에야 리딩회사로 부상했다"며 "정보기술연구소와 마케팅연구소를 기반으로 차세대 CRM 솔루션을 개발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에는 엠피씨의 기업가치를 높게 본 일본의 IBJ(일본흥업은행)와 도쿄화재가 출자해서 만든 HTCL펀드가 한국의 코아구조조정기금과 함께 6백만달러를 액면가 기준 22배수로 투자했다.
조 사장은 "10년간 한 우물만 팠던 결실을 지금 거두고 있다"며 "CRM 분야에서 세계 일류 회사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당당히 밝혔다.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