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실패...장애...'인터넷서 월척' .. '인생유전' 김영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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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청와대에서 정보화 우수사례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격려를 받은 김영철(40)씨의 인생역정은 험난한 파도와 맞서 싸운 어부의 삶 그 자체였다.
제주에서 태어나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80년 남제주군 신도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때만 해도 그의 인생이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범한 시골 학교 선생님에게 첫 시련이 닥친 것은 84년.
당시 그는 부업으로 돼지를 키웠다.
이 돼지들이 갑작스런 괴질병으로 모두 죽게 된 것이다.
4천만원의 빚을 안게 됐다.
한달 22만5천원의 교사 월급으론 평생 갚을 수 없는 돈이었다.
김씨는 퇴직을 결심,퇴직금으로 원금 일부를 갚은 뒤 부친의 배를 몰고 어부의 길로 들어섰다.
어부의 길이 편할 리는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노력했으며 그 결과 어부로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게 됐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성공한 어부에게 또다시 시련이 닥쳤다.
94년 배에서 벨트를 끼우다가 손가락이 끼면서 오른쪽 손가락 4개가 잘려나간 것이다.
김씨의 인생은 추락했다.
2년간 집밖에도 나가지 않고 좌절감속에 세월을 보냈다.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배를 몰고 나간 어느날,심한 파도가 치면서 바다에 빠져버렸다.
다행히 선원이 배를 멈췄지만 조류가 워낙 거세 1㎞를 헤엄치고 나서야 목숨을 건졌다.
이 일이 있은후 김씨는 배를 처분하고 어부의 길을 포기했다.
대신 정부의 보조를 받아 제주특산물인 돔 가공공장 운영자로 변신했다.
하지만 판매망을 갖추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희망을 가져다 준 것이 바로 인터넷.그는 정부가 실시한 정보화교육에서 배운 지식으로 직접 홈페이지(www.chejusea.co.kr)를 만들어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길을 텄다.
여섯손가락만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 끝에 ''바이앤조이''''롯데닷컴''등 대형 인터넷 쇼핑몰에도 물건을 납품하게 됐다.
99년 6억5천만원이던 매출액은 지난해 14억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인터넷 덕분에 ''열린 눈''을 갖게 된 이후 신체적 장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전세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게 요즘 그의 포부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
제주에서 태어나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80년 남제주군 신도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때만 해도 그의 인생이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범한 시골 학교 선생님에게 첫 시련이 닥친 것은 84년.
당시 그는 부업으로 돼지를 키웠다.
이 돼지들이 갑작스런 괴질병으로 모두 죽게 된 것이다.
4천만원의 빚을 안게 됐다.
한달 22만5천원의 교사 월급으론 평생 갚을 수 없는 돈이었다.
김씨는 퇴직을 결심,퇴직금으로 원금 일부를 갚은 뒤 부친의 배를 몰고 어부의 길로 들어섰다.
어부의 길이 편할 리는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노력했으며 그 결과 어부로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게 됐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성공한 어부에게 또다시 시련이 닥쳤다.
94년 배에서 벨트를 끼우다가 손가락이 끼면서 오른쪽 손가락 4개가 잘려나간 것이다.
김씨의 인생은 추락했다.
2년간 집밖에도 나가지 않고 좌절감속에 세월을 보냈다.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배를 몰고 나간 어느날,심한 파도가 치면서 바다에 빠져버렸다.
다행히 선원이 배를 멈췄지만 조류가 워낙 거세 1㎞를 헤엄치고 나서야 목숨을 건졌다.
이 일이 있은후 김씨는 배를 처분하고 어부의 길을 포기했다.
대신 정부의 보조를 받아 제주특산물인 돔 가공공장 운영자로 변신했다.
하지만 판매망을 갖추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희망을 가져다 준 것이 바로 인터넷.그는 정부가 실시한 정보화교육에서 배운 지식으로 직접 홈페이지(www.chejusea.co.kr)를 만들어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길을 텄다.
여섯손가락만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 끝에 ''바이앤조이''''롯데닷컴''등 대형 인터넷 쇼핑몰에도 물건을 납품하게 됐다.
99년 6억5천만원이던 매출액은 지난해 14억원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인터넷 덕분에 ''열린 눈''을 갖게 된 이후 신체적 장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전세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게 요즘 그의 포부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