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4명의 직원들과 회사의 전 PC를 포맷하느라 밤을 꼬박 샜습니다. 그렇지만 언제 단속반이 들이닥칠지 몰라 일손이 영 잡히지 않네요"

9일 역삼동에 있는 소프트개발업체인 A사.

60여명의 직원이 있는 이 회사는 8일 7천만원어치의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직원들의 PC에 새로 설치하느라고 업무를 완전 중단했다.

지난 5일부터 시작된 불법소프트웨어 단속반이 강남일대를 집중적으로 돌고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강남 테헤란밸리 벤처기업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벤처기업들 사이에서는 "오늘은 아셈타워가 단속대상이다" "유명닷컴기업인 OO는 단속에 걸려 9억원의 벌금을 내게 됐다"는 등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또 다른 소프트웨어개발업체인 B사는 이날 PC에 있는 저작용 툴 등 고가의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서버에 모두 저장시켰다.

이 회사는 이 서버를 미리 임대한 오피스텔로 가져가 외부에서 개발작업을 할 계획이다.

B사 관계자는 "드림위버 울트라DEV 등 저작용 툴은 고가이기 때문에 우리 자금사정으로는 구입할 수 없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아예 회사문을 닫거나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 저녁시간에만 일을 하는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외국계 기업인 C사는 9일 직원들에게 출근하지 말라고 통보했다.

웹에이전시업체인 D사도 낮에는 아예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고 단속이 끝나는 오후 6시부터 출근해 밤 12시까지 업무를 보고 있다.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단속을 강화하면 살아남을 벤처기업은 하나도 없다"며 "테헤란로의 벤처기업들이 단속 공포 때문에 일에 손을 못대고 있다"고 전했다.

조립컴퓨터를 판매하는 용산전자상가도 분위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3천여개의 조립PC업체들이 몰려있는 선인상가와 나진상가에 최근 단속반이 들이닥친데 이어 8일에는 원효상가에도 단속의 손길이 뻗쳤다.

이 때문에 용산전자상가에 입주해 있는 업체중 상당수가 아예 일시적으로 문을 닫아 버렸다.

용산전자상가 소프트웨어 유통업자인 이모씨는 "가뜩이나 PC시장이 침체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정부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결국 MS 등 외국업체들의 압력 때문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매출도 뚝 떨어졌다.

상인들은 업체별로 차이가 있지만 10∼50% 정도 판매량이 줄었다고 울상이다.

용산전자상가조합회 권영화 부사장은 "끼워 주는 소프트웨어가 없는 ''깡통PC''만 팔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권 부사장은 "이번 단속을 계기로 업체들에 정품소프트웨어를 구입하도록 권유하고 조합이 상인들의 요청을 받아 저렴한 가격으로 SW를 공동구매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품소프트웨어 구입신청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일부 소프트웨어가 품절되고 가격이 올라 기업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용산전자상가의 경우 MS가 조립PC 업체들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윈도98 DSP버전은 웃돈을 주고 거래되는 실정이다.

전자랜드21의 이상민 주임은 "윈도 포토숍 아래아한글 MS오피스 등을 구입하려는 문의전화가 하루에 20∼30통씩 온다"며 "물량이 달려 제품을 팔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포토숍 일러스트레이터 등 그래픽소프트웨어를 팔고 있는 어도비사도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대리점에서는 재고가 바닥났고 미국 본사에 주문해도 1주일 이상은 걸리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의 한 관계자는 "포토숍을 구입하려고 신청했더니 2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그렇다고 일을 안할 수도 없어 어쩔수 없이 불법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완.고경봉.김경근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