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이 지난 20여년간 발표한 글을 류시화 시인이 계절별로 엮은 산문집 ''봄 여름 가을 겨울''(이레) 뒷부분에 실린 77편의 편지는 강원 산골 오두막에서 생활하는 수행자의 맑은 향기를 전해준다.
''난로와 아궁에 군불 지피고,얼어붙은 개울에서 얼음장 깨고 물 길어오고,땔감 톱으로 켜고 도끼로 쪼개는 일이 반은 일과이고 반은 운동이라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절집의 청규(淸規) 그대로다.
또한 자연에서 발견하는 삶의 경이로움에 대한 예찬은 선시에 가깝다.
''조금 전에 조계산이 보름달을 토해냈네.구름 한 점 없는 달밤이 참으로 좋네'' ''나리꽃 둘레로는 망초가 허옇게 꽃을 피우고 있고,개울가에서는 노란 마타리가 하늘하늘 손짓을 보내옵니다.
아,이것이 바로 화장세계(華藏世界)인가 싶습니다''
출가수행자로서의 마음가짐도 곳곳에 드러난다.
법정스님은 ''바람은 멈추면 죽습니다.구도의 길도 바람 같은 것이 아닐까요''라며 ''날마다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새 날이어야지 그날이 매양 그날이라면 늪에 갇힌 물처럼 썩게 마련''이라고 경계한다.
''본래 청정한 마음도 닦지 않으면 그 빛을 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말 적게 하고,잠 덜 자고,음식 덜 먹는 것''을 수행자의 근본으로 삼으라는 얘기다.
도반들에게 보낸 편지에선 정진을 당부하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처음으로 빈 암자에서 혼자 지내게 된 스님에겐 ''홀가분해서 좋긴 하겠지만 거기에는 투철한 수행자의 자기 질서가 전제돼야 한다''면서 게으름에 빠질 함정을 경계했다.
또다른 스님에겐 ''딴 생각 말고 그 자리에서 일진(一眞)을 이루도록 인욕정진하게''라며 채찍질을 가했다.
책의 앞부분에 계절별로 실린 글에는 자연의 가르침에 경청과 경외,생명에 대한 애정 등 선승의 내면이 드러나 있어 곁에 두고 읽을만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