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개혁은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개혁의 주체도 자율 개혁의 취지에 걸맞게 정부에서 기업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가 터진 후 지난 3년 동안 대기업 개혁은 사실상 정부가 채권단을 앞세워 주도해왔다.

''재벌 개혁 5대 원칙''에 바탕을 둔 제도와 법이 잇따라 도입됐고 대기업들은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때론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견디며 돈이 되는 사업 부문을 팔기도 했다.

대기업들의 이같은 개혁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과 외국 투자가들의 평가는 여전히 냉담하다.

부채 비율을 낮추는 등 재무적 개혁 성과는 인정되지만 기업집단의 지배 구조와 경영조직 개선 면에서 미진하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런 지적을 경영 시스템에 반영하는데 개혁의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삼성 그룹의 경우 지난해 삼성전자 삼성전기 등 주요 계열사들이 국내외에서 투자설명회(IR)를 가질 때마다 삼성자동차 부채 처리 문제로 곤욕을 치르곤 했다.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시원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초우량 기업으로서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도 결국 독립 경영에 대한 명확한 의지를 심어주지 못한 데 따른 결과다.

LG 그룹의 경우 오너들이 소유한 비상장 주식을 계열사들이 매입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불신을 불러 일으켰다.

LG는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계열사별 독립경영 의지를 거듭 밝혔지만 시장의 의심은 좀체 가라 앉지 않았다.

현대 그룹은 형제간 갈등이 시장 불신으로 이어져 현대건설이 퇴출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현대 사태가 빚어질 당시 재정경제부 고위 관리조차 "현대건설의 운명은 시장의 뜻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시장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개혁의 잣대가 됐다.

주요 그룹들이 지주회사 설립을 적극 검토하는 것도 지배구조를 개선해 잃어 버린 시장의 신뢰를 사려는데 목적이 있다.

30대 그룹의 경우 총수 및 관계인의 평균 지분은 5.4%(99년 기준)에 불과하다.

이렇게 적은 지분으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계열사별로 순환 출자된 지분(45.2%)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은 지주회사 설립과 함께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고 기업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기업도 인정하고 있다.

삼성은 장기적으로 금융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는 산업과 금융자본을 분리하려는 정부의 개혁 방안과 부합하는 것이다.

LG는 전자 및 화학 소그룹의 지주 회사를 설립키로 하고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LG관계자는 "지주 회사설립 작업이 끝나면 계열사별 독립경영과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개혁 효과를 동시에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SK 효성 등 다른 그룹도 지배구조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중이다.

매년 연례 행사처럼 되풀이 되고 있는 변칙 증여 및 부당 내부거래 문제를 둘러싼 공정거래위원회와 기업집단 간 갈등도 풀어야 할 과제다.

부당 내부거래와 관련한 명확한 기준을 세워 시장의 질서를 찾는데 양측 모두 노력해야 한다.

로버트 펠튼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고 현금 흐름을 중시하는 경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