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오"

사진을 찍게 서 달라는 요청을 받아 넘기는 두 비구니의 말끝이 말갛게 올라간다.

정중하면서도 단호하다.

세진을 거부하는 두 볼의 홍조.

또 청하기가 어렵다.

다시 고개를 떨구고 걷는다.

유난히 많은 산새들의 지저귐에 파묻힌다.

팔뚝만한 청솔모가 사방에서 부산스럽다.

바짓가랑이 스쳐 이는 작은 바람에 날린 낙엽들이 길가로 풀풀 나앉는다.

밭은 헛기침 소리가 쩡쩡 울리더니 되돌아와 가슴에 꽂힌다.

제풀에 흠짓 놀란다.

뒤를 돌아본다.

또 다른 비구니 둘이 올라오던 쪽으로 살며시 몸을 돌린다.

키 큰 나무 사이 먼 하늘에 시선을 둔다.

하릴없이 빼앗긴 시간들을 보려 하는가.

아니면 내일을 희망하고 있는가.

속으론 자꾸 분별하려 든다.

세속의 잣대가 그런가 보다.

나를 빼놓은 남을 생각하기는 불가능한 이기적인 세상.

오늘 길에 오른 목적이 꼭 그렇지 않은가.

아서라, 그냥 그대로 맡겨 둘 일이다.

경북 문경땅 사불산(913m)의 대승사.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여행의 목적지다.

신라 진평왕 9년(587년)에 세워진 고찰.

왕명에 의한 개산역사를 갖고 있다.

삼국유사의 한 대목은 이렇게 적고 있다.

붉은 천에 싸인 바윗덩어리(사불암)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네 면에는 불상이 새겨져 있다.

진평왕이 몸소 찾아 예를 올리고 대승사를 창건케 했다는 것이다.

산의 이름도 공덕산에서 사불산으로 바꿔 부르게 된 연유를 담고 있다.

대웅전에 안치된 아미타목각불탱과 이 목각불탱을 놓고 영주 부석사와 내것이다 네것이다 시비했던 기록을 담은 관계문서(보물 575호),
선실에 모셔진 고려시대 금동보살좌상(보물 991호)을 본다.

무슨 불사를 일으키는지 포클레인 소음으로 귀가 따갑다.

미련없이 왼편 오솔길로 들어선다.

비구니 수행도량인 윤필암으로 가는 길이다.

참나무 낙엽이 황금빛 융단처럼 깔려 푹신하다.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겨울산사로 가는 길이 꼭 이러했던 것 같다.

바스락 낙엽을 헤집으니 서릿발 돋은 땅에 뿌리내린 진초록 풀잎이 하늘을 보고 있다.

무엇으로도 거스를수 없는 생명력이 경외스럽다.

이렇게 뿌리박고, 이렇게 일어서야 하는데.

뜬금없는 생각이 바람에 흩어진다.

고려 때 바위벽에 새겨 놓은 마애여래좌상(유형문화재 239호)을 지나 윤필암에 들어선다.

방금 싸리비질을 한 것처럼 단정하다.

사불전에 든다.

커다란 창 밖으로 보이는 먼 산 봉우리의 사불암을 불상으로 모시고 있다.

허리를 굽혀야 사불암을 우러를수 있다.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 같다.

묘적암으로 넘어 간다.

허름한 기역자 시골집 분위기의 단촐한 참선도량이다.

지공, 무학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화상으로 불리는 나옹 스님이 출가한 곳이다.

순조 3년에 조성되었다는 "공민왕사 나옹대화상영"이 원형대로 보전돼 있다.

나옹이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습니다만 보려 하여도 볼 수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유효한 고백이다.

말이 있는 것 같지만 말이 없고, 찾아야 하는 길은 오리무중인게 이즈음의 현실.

질시와 반목, 드잡이로 모두들 휘청대고 있다.

희망의 끈은 놓지 않는다.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는 저력을 믿는다.

한해의 긴 시간을 매듭짓는 시간.

돌아서는 발걸음에 힘이 실린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