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서울 반포의 메리어트 호텔 개관과 함께 ''돌아온 신화''로 재계의 관심을 모았던 신선호(53) 회장이 이끄는 (주)센트럴시티가 지난달 1차 부도를 맞았다.

''율산 재기신화가 실패로 끝났다''는 악성 루머로까지 번진 이 사건은 신 회장이 율산 시절 서울은행에 진 1천7백억원의 빚 처리 문제를 놓고 서울은행과 빚은 감정싸움에서 비롯됐다.

신 회장이 센트럴시티를 담보로 돈을 빌려 기존의 빚을 털어내려는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울은행측과 빚의 상환기간 및 이자율을 놓고 빚은 마찰이 증폭된 결과였다.

부채의 현가 할인율과 상환기간 등을 놓고 양측의 계산 방법에 따라 수십억원이나 차이가 난 것이다.

서로 양보해야한다고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센트럴시티 빌딩 내의 서울은행 지점으로 24억원짜리 센트럴시티 어음이 돌아왔고 은행측은 법인통장 잔고 부족이라는 이유로 ''원칙대로'' 1차 부도처리해버린 것이다.

신 회장이 은행과 평소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면 대출연장 같은 손쉬운 방법으로 별 탈 없이 넘어갈 수도 있었다는 게 이 사건을 바라보는 금융계의 시각이다.

센트럴시티의 경우 운전자금 확보에 문제가 없어 은행과의 다툼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거래은행과 다투다가 기업 운명이 바뀐 예도 드물지 않다.

비료제조업체인 경기화학은 대주주의 지나친 경영권 고집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중단되고 법정관리로 직행해버린 케이스.

이 회사는 지난해 3월 자본금 감축과 출자전환을 내용으로 한 워크아웃 약정 방안을 놓고 채권금융기관과 줄다리기를 벌였다.

경영권 박탈을 우려한 이 회사 대표이사인 권회섭씨가 금융 지원만 해달라고 버티자 채권단이 워크아웃을 아예 취소해 버렸다.

현재 이 회사의 주인은 서울보증보험으로 바뀌었다.

반면 주거래 은행과의 돈독한 관계 덕분에 기사회생한 기업도 있다.

쌍용양회는 조흥은행과의 40년 거래 인연으로 지난달 4일 부실기업 퇴출 판정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비슷한 처지의 동아건설이 서울은행의 회생불가 판정과 함께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과는 대조적이다.

경영 일선에 복귀한 김석원 회장과 조흥은행 위성복 행장이 마찰 없이 자구계획을 진행시키면서 신뢰를 쌓은 것도 도움이 됐다.

쌍용 관계자는 "쌍용이 쓰러지면 조흥은행도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이 작용했겠지만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조흥측이 구조조정을 독려하면서 다른 채권은행의 지원을 앞장서서 끌어내 쌍용을 살렸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의 박상원 연구위원은 "기업과 은행이 너무 친해도 은행이 부실해지는 문제점이 있다"면서 "내재가치와 사업성에 기반한 공동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