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와 공사 등 공공기관이 ''잘못''으로 판정된 사안도 시정하지 않아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강제집행력이 없는 정부기관의 ''시정권고''는 아예 무시하기 일쑤고 피해를 본 시민들의 항의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15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94년부터 99년까지 위원회에 접수돼 시정권고를 내린 2천1백56건중 17.4%인 3백84건이 시정권고를 따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1백59건(7.4%)에 대해서는 해당 기관이 아예 수용을 거부하고 있으며 1백69건(7.8%)은 시정하겠다면서도 장기간 시행을 미루고 있다.

또 56건(2.6%)은 수용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경우 도로확장 공사를 하면서 편입한 건물의 용도가 주택이고 실제로 주인 최모씨가 이 건물에 거주한 사실이 확인됐는 데도 최씨를 국민주택 특별공급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고충처리위에서는 최씨에게 이주대책을 수립해 주라고 권고했으나 성북구측은 ''집주인 최씨가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이주대책을 세워주지 않고 있다.

고충처리위의 조사결과 협의매수는 의무사항도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서울 금천구청은 도로변 안전과 미관을 위해 배모씨에게 담장 및 수목을 설치하도록 요구해 놓고 뒤늦게 지난 98년7월부터 ''도로를 무단사용했다''며 배씨에게 4천8백여만원의 도로점용로(부당이득금)를 부과했다.

배씨는 "비가 오면 시흥대로의 물이 흘러내려 도로가 유실되고 통행인의 안전에도 문제가 있다"며 "당시 관할구청인 영등포구청이 담장을 세우라고 지시해 이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배씨는 "나무를 심은 것도 구청의 권고에 다른 것이고 구청측이 담장에 도시 미관용 벽화까지 그려 놓고는 이제와서 부당이득금을 부과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역시 고충처리위원회에서 시정지시를 내렸지만 구청측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남해고속도로 건설과 관련,대부분의 토지를 수용당해 쓸모없게 된 자투리땅만 남게 된 김모씨는 도로공사에 나머지 땅도 수용해 주거나 농로를 개설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김씨의 민원을 접수한 고충처리위원회는 심의결과 도로공사에 해당 토지를 매수,보상하라고 결정했지만 도로공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다.

도시계획시설에 편입된 인천광역시 북구 상야동의 토지 소유자인 한모씨는 시행청인 서울지방국토관리청과 관리청인 인천시가 서로 보상을 미루는 바람에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충남 부여의 류모씨는 자신의 토지가 주변 토지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낮은 수준으로 공시지가가 결정돼 고충처리위원회로부터 재산정 지시를 받아냈는 데도 부여군은 이를 이행하지 않아 피해를 보고 있다.

이밖에 하천에 편입된 지역에 심어져 있는 나무나 제방공사에 편입되고 남은 자투리땅,보상절차 진행중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주택 등을 가지고 있는 민원인들이 ''적절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해당 관청으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서울 금천구의 피해자 배씨는 "국민들의 고충을 처리해 주겠다며 설치한 정부기관에서 결정된 사항이 일선에서 이행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관청의 횡포를 어디에 항의해야 하느냐"며 "고충처리위원회의 시정권고에 강제집행력을 부여하거나 따르지 않는 기관을 처벌하는 등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유택 기자 chang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