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헌정위기(constitutional crisis)를 논할 정도로 대통령선거의 후유증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 미국인들은 낙관적이다.

정치적 혼미상태는 조만간 매듭지어질 것이고 경제 또한 다소 둔화되기는 했지만 경착륙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경직된 자세를 보였던 미국의 대북한 시각도 한반도의 화해분위기가 반영돼 따뜻하게 바뀌어 가고 있다.

21세기 첫해를 보내는 시점에 미국의 가장 권위있는 연구소중 하나인 브루킹스연구소(워싱턴 소재)를 이끌고 있는 마이클 아마코스트 소장(63)을 만나 미국대선과 미국경제,한반도문제등 현안들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들었다.

<만난 사람=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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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로 미국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현 상황을 평가해달라.

△아마코스트 소장=대통령선거가 11월 7일 실시됐으니까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많은 사람들이 염증을 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플로리다주 사태는 유권자의 의지(will)를 얼마나 성실하게 반영하느냐라는 원칙과,법에 의한 지배 (rule of law),선거관리의 효율성,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에 존재하는 조정영역 등 여러가지 원칙과 규범사이의 갈등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큰 갈등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은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결론을 유도할 수 있다면 그만한 시간쯤은 얼마든지 할애할 수 있는 일이며 또 가치있는 일이다.

-헌정위기를 논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코스트 소장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런 용어를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재검표명령 이후 양측의 갈등이 증폭됐고 현재의 혼미상태가 해소돼 당선자가 정해지더라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이런 점에서 헌정위기를 언급하는 데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단 한 건의 폭력사태도 없었다는 점은 미국이 그만큼 건강한 사회라는 것을 반영한다.

결국 헌정위기 우려는 잠잠해질 것으로 믿는다.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 제도를 없애자는 주장도 있는데.

△아마코스트 소장=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우리는 연방제도를 채용하고 있고 각주는 나름대로의 주권이 있다.

아무리 인구가 적은 주라도 연방정부 내에서 일정 지분의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캘리포니아 뉴욕 일리노이 펜실베이니아 텍사스 등 인구가 많은 주가 모든 사안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인구가 적은 주들이 이런 연방제를 찬성할 이유가 없다.

선거인단제도를 없애려면 상하 양원의 3분의 2 찬성과 50개주의 3분의 2 찬성을 얻어야 한다.

각 주는 1표씩의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구가 적은 주들이 찬성할 리가 없으며 따라서 이런 주장은 주장에 그칠 것이 뻔하고 또 실현되지도 않을 것이다.

선거인단폐지문제는 과거에도 수없이 제기됐지만 다 논의에 그치고 말았다.

-새 정부의 대북(對北)정책을 전망해 달라.

△아마코스트 소장=차기대통령이 조지 부시인가 앨 고어인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결국 변수는 우리가 아니라 북한이 쥐고 있다.

그들이 행동의 규범과 원칙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최근 들어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만 이를 확인하는 자세와 관심에 공화당과 민주당 간에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 방문의사를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데.

△아마코스트 소장=물러날 대통령이라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족쇄를 채워놓는 것은 옳지 않다.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다녀갔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그 답방으로 북한을 다녀왔으며 또 국무부 관료들이 꾸준히 대북접촉을 해왔으니 뭔가 건설적인 대안이 구체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면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귀하는 일본대사를 지냈을 정도로 일본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향후 북·일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아마코스트 소장=북·일 관계는 남북관계나 북·미 관계보다 진척이 느린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북한이 적군파문제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더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북·일 관계개선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북한은 일본에 대해 배상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아마코스트 소장=북한이 남한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경제적인 돌파구 마련에 많은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과의 관계도 배상문제의 진척에 따라 그 기상도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미국경제가 냉각되고 있고 경(硬)착륙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데.

△아마코스트 소장=그것은 기우다.

미 경제가 다소 수그러들고 있는 조짐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지만 경제가 경착륙할 것이라는 전망은 다소 과장된 것이라고 본다.

더욱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6차례나 지속적으로 인상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내릴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이미 지난 11월의 실업률이 전달의 사상 최저 수준인 3.9%에서 4%로 올라갔기 때문에 임금상승압력에 따른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따라서 FRB가 마음만 먹으면 금리는 언제라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금리와 FRB가 요술지팡이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지 않은가.

△아마코스트 소장=그것은 사실이다.

경제가 금리 하나로 움직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경제는 비교적 투명하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금리라는 지표에 민감하게 움직이고 또 이를 읽고 판독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잘 조직돼 있다.

따라서 과신하는 것은 금물이지만 FRB의 경제조절능력은 그런대로 믿을 만하다.

-미국 무역적자가 늘어나고 있다.

새 정부의 대외무역정책은 어떠리라고 보는가.

△아마코스트 소장=올들어 지난 9월까지의 무역적자가 2천7백억달러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지만 아직까지 큰 이슈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무역적자 하나로만 보면 엄청난 규모지만 9조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전체경제에 비추어 볼때 아직까지 큰 경제적 이슈는 아니다.

-고유가 문제는 어떤가.

△아마코스트 소장=유가와 관련해 우리 연구소의 워윅 매키빈 연구위원이 재미있는 계량분석을 해 놓은 것이 있다.

유가가 배럴당 30달러에서 60달러로 치솟아 1년간 유지되다가 다시 30달러로 내려온다는 가정 하에 미국경제의 각종 지표가 어떻게 변할 것이냐 하는 시뮬레이션을 해봤는데,미 성장률이 첫해에 0.21%포인트 떨어지고 두 번째와 세 번째 해에는 각각 0.77%와 0.74%포인트씩 둔화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통해 유가가 미국경제에 결정적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결론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 등 석유를 수입해서 쓰는 나라들엔 많은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추측이 가는 일이다.

-한국은 현재 또 다른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다.

△아마코스트 소장=경제위기는 심리적인 면도 많다.

지도자들이 이를 잘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그 대원칙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이 97년 외환위기를 맞은 것은 환율을 인위적으로 유지하려고 한 데에도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또 최근 아르헨티나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아르헨티나 통화가치가 과대평가돼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구조조정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열의를 가지고 있다.

그 내면의 실정은 잘 모르지만 일단 의지가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yangbong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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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인가 ]

마이클 아마코스트(63) 브루킹스 연구소장은 미국내 대표적인 "아시아통"으로 꼽힌다.

젊은 시절부터 미국 국무부에서 20여년간 근무한 그는 정치담당 차관을 거쳐 필리핀주재 미국대사(82년~84년),일본주재 미국대사(89년~93년) 등을 역임했다.

특히 7년동안의 일본 체류시 미.일 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후 93년 스탠퍼드대의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석좌교수로 임명됐으며 95년에는 미국에서 가장 전통있는 경제.대외정책 연구소인 브루킹스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했다.

콜럼비아대에서 국제정치학 석.박사를 받았으며 저서로 "아시아 연대와 미국정치" "일본은 친구인가 경쟁자인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