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예상되는 대량실직이 IMF(국제통화기금) 때보다 더 "악성"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대책이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마땅하게 만들어줄 일자리가 없고 재교육과 재고용 등에 투입할 재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시켜줄 일거리도 대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책적 지원까지 취약해 사회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년도 전체 실업대책 예산은 5조6천억원으로 책정돼 있다.

올해(5조8천8백93억원)보다 5% 줄어든 규모다.

당장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같은 ''연말 구조조정''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노동부는 당초 내년 실업률을 3.6%로 추정했었다.

올해(4.1%)보다 0.5%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이에 맞추어 실업대책 예산을 줄여 잡았다.

공공근로 등도 올해보다 대폭 줄였다.

연말로 접어들면서 구조조정이 문제가 되자 실업률 전망치를 다소 조정하기는 했다.

0.2%포인트를 높여 3.8%로 수정했다.

하지만 수정치 역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동부는 이를 근거로 지난 16일 실업대책을 내놓았다.

구조조정 실직자 5만명과 계절적 요인에 의한 실업자 13만명 등 18만명에 대해 재취업과 고용안정을 돕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대안은 사실상 ''무책''이다.

당장 내년 초까지 10만명 정도가 퇴출될 것으로 보이는 데도 △12월부터 5천명에게 2개월씩 특별직업훈련을 실시하고 △현재 이직이 예정돼 있는 근로자 5천명에게 최고 1백만원까지 재취업 훈련비를 대준다는게 고작이다.

나머지는 모두 내년으로 넘어갔다.

그것도 막연한 ''방침''만 제시됐다.

△생산직 우선훈련(1만명) △실업자 재취직 훈련(상반기 6만명) △채용장려금이나 취업알선(2만명) △신규 대졸여성 취업지원(9천명) 등으로 언제, 어떻게 실행될지 기약할 수조차 없는 약속들이다.

이를 위해 책정된 예산을 보면 그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들 계획중 대졸여성 취업지원을 위해서는 2천2백만원이 책정됐다.

취업설명회와 만남의행사 등을 개최하는 ''행사 비용''이다.

하지만 2천2백만원을 들여 행사를 연다고 대졸 여성 9천명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실업대책 직업훈련도 마찬가지다.

노동부는 실업자 재취직훈련과 고용촉진훈련 유망분야훈련 창업훈련 등을 통해 내년에 실업자 및 근로자, 학생 등 16만명에게 직업훈련을 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한 예산은 2천8백5억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올해보다 인원은 23.4%, 예산은 17.6% 줄어든 것이다.

실업자 급증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재취업훈련비를 줄여 놓은 것이다.

공공근로사업은 더 문제다.

내년 공공근로 예산은 6천억원으로 잡혔다.

올해 1조6천억원의 38%에 불과한 규모다.

만일 올해와 같은 속도와 규모로 공공근로사업을 벌인다면 3월 말이면 재원은 바닥난다.

결국 정책간의 연계미흡과 잘못된 예측이 이런 상황을 빚어낸 것이다.

구조조정과 실업대책이 패키지로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데도 각각 따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한쪽에선 실업자를 늘리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도 실업관리 당국에선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제대로된 전망과 대책이 나온다는건 불가능하게 돼 있었다.

기본적인 인프라도 취약하기 짝이 없다.

어렵사리 훈련을 받았더라도 일자리로 연계시키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에 고용안정센터는 1백22개, 인력은행은 20개가 있다.

2백53개 시.군.구중 절반에만 확보돼 있다.

실직자나 재취업훈련을 받은 사람이 찾아가 일자리를 구할 창구조차 없는 지역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몰론 정부 탓만도 아니다.

국회는 지난달 추경예산안을 심의하면서 실업대책비 일부를 깎아버렸다.

취업 유망분야 훈련비 90억원을 모두 없애 버린게 그 사례다.

투자상담사나 국제무역사 등을 위한 훈련비를 ''사치스럽다''며 잘라 버리고는 이제와서 "실업대책이 없다"고 정부를 닦달하고 있다.

앞으로 진행될 금융 및 공공부문의 구조조정과 대학의 신규졸업생,겨울철 실업 등을 감안하면 내년 초엔 실업자가 약 1백20만명 이상으로 늘어나고 실업률이 5%를 넘을 것이라는게 노동계의 추산이다.

강순희 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도 "구조조정 실패로 경제성장률이 4%대로 낮아지면 내년 2월께는 실업률이 4.7%로 상승하고 실업자는 1백3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이제라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요불급한 사업을 줄여서라도 실업지원 예산을 늘리고 공공근로사업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제에 정책간의 연계를 강화하고 실업대책과 관련된 인프라를 재구축하는 노력도 필요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승욱 기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