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이 아우디라는 자동차 회사는 잘 알고 있지만 아우디의 창립자인 "오거스트 호르히"라는 이름은 생소하게 느낄 것이다.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와 자동차 모델들이 회사의 설립자나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사용하는 관례가 많지만 아우디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오거스트 호르히는 경영인으로보다는 뛰어난 자동차 기술자로 더 유명하다.

호르히 박사는 전세계 자동차 기술사에서 포르쉐 박사와 함께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호르히는 1868년 10월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철공소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면서 기술을 연마했고 미트발다(Mittwalda)기술학교와 엔진제작회사를 거치면서 엔지니어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호르히가 자동차 제작에 관여하게 된 것은 1896년 벤츠사에 자동차 제작 부서장으로 입사하면서부터다.

당시 호르히는 엔지니어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기때문에 속도와 성능을 중시하는 자동차 경주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자동차를 많이 판매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자동차 경주에 참가해 우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벤츠사는 그때만 해도 자동차 경주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호르히 박사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벤츠사를 떠나 1899년 새로운 자동차 회사 호르히(Horch)사를 세웠다.

그러나 호르히가 자동차 경주에만 열을 올리는 바람에 호르히사 내부의 동업자들과 갈등이 깊어져 자신이 세운 회사를 나오는 불행을 겪게 된다.

호르히는 이후 또다른 자동차 회사를 세우고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바로 아우디다.

아우디의 역사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1930년대 불어닥친 경제 불황과 자동차 회사들간의 경쟁 심화로 자동차업계 전체가 휘청거렸던 것이다.

이에 아우디는 다른 자동차 회사인 반더러,호르히,데카베사와 통합해 아우토 유니온(Auto Union AG)을 만들었다.

아우디 엠블럼의 네개의 동그라미는 바로 이 아우토 유니온의 네 회사를 뜻한다.

호르히 박사는 1944년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파괴된 아우디의 공장과 아우토 유니온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다가 1951년 2월 3일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호르히 박사 사망이후 아우디는 전세계 최초로 전륜구동 자동차를 개발하는 등 선진적인 기술과 새로운 스타일의 자동차를 잇달아 선보이며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손을래 <수입차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