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정돈된 그린을 볼 때마다 두 살배기 조카의 발바닥이 생각난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여린 느낌의 발바닥과 그린.

그 아이가 밟으면 얼마나 좋아할까하는 생각과 너무 고운 잔디이기에 조카의 여린 발로만 밟아야할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골프장의 생명은 ''그린''이라고 할 정도로 전체 코스에서 그린이 주는 비중은 각별하다.

볼을 굴려 홀에 들어가도록 하는 관리상태를 보고 사람들은 코스 전체를 평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 대회에 참가해서 겪은 일이다.

뒷 홀 그린쪽에서 화내며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린 관리도 잘 안해 놓고 ''빨리빨리''만을 재촉한다는 게 이유였다.

화를 내던 그 골퍼,분을 못이겨 퍼터로 그린을 내려찍는다.

그린에 상처를 내는 것이 그 골프장에 대한 가장 가혹한 분풀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저지른 일이다.

그 골퍼는 즉시 퇴장명령을 받았다.

그린을 조성하는 데 들어간다는 엄청난 비용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아는 골프장 그린관리자가 있다.

올 봄 동해(冬害)를 입은 그린을 관리하느라 꼬박 두 달 동안 집에 들어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두세 달 동안 밤새워 잔디를 고르고 물을 주면서 평생 이렇게 맘 졸이며 무언가를 키워본 적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골프가 너무 좋아 하루 걸러 골프장을 찾는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더 호소력 짙은 모습이 있다.

그린 라인읽기도 바쁜 상황이지만 그 틈에 짬을 내 쪼그리고 앉아 볼에 파인 자국을 수리하고 있는 골퍼.

그 모습에서 골프에 대한 그 사람의 절절한 애정을 느끼곤 한다.

"이곳 그린은 왜 이리 거칠어!"라고 불평하기 전에 그 거친 그린을 만든 것이 내가 함부로 남긴 발자국 때문은 아니었을지를 생각해 봐야겠다.

그린을 아기 살결이라 생각한다면 대한민국 어느 골프장의 그린이 거칠어질 수 있겠는가.

대회가 끝난 후 시상식이 연습그린에서 있었다.

여성수상자들이 하이힐을 신은 채로 걸어가는 바람에 그린에 구두자국이 생겼다.

가슴이 철렁했다.

''나를 호명하면 구두를 벗고 맨발로 달려나가 상을 받으리라''

그린에 대한 애정을 온몸으로 보여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끝까지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고영분 방송작가 godoc100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