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 2차개혁 청사진 빨리 내놔야 ]

비상경제운영계획을 짜야 할 정도로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

고유가 반도체가격폭락 포드의 대우차인수포기 등 악재가 겹친데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졌다.

주가가 오름세로 돌아서 금융불안심리가 진정되는 듯한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근본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우리경제가 심각한 위기를 맞을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한국경제신문은 최근 우리 경제가 직면한 상황을 점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긴급 좌담회를 마련했다.

좌담회는 최경환 한경 전문위원의 사회로 김광두 서강대 교수와 전광우 국제금융센터 소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김 교수와 전 소장은 경제관련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여야공동특별대책팀을 구성하고 은행구조조정 청사진을 조속히 보여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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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환 전문위원 =최근 국제유가 인상, 반도체 가격하락, 포드의 대우차 인수 포기 등 악재가 겹쳐 주가가 폭락하는 등 경제전반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해야 할까요.

△ 전광우 소장 =총체적인 위기 단계는 아니지만 경제현안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심각한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잠재적 위기라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시기적으로 여러 악재가 겹쳤는데 특히 대우차 매각 지연은 외국 투자자들에게 한국의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식을 줄 수 있어서 우려됩니다.

그러나 위기에 대한 과민반응은 경제적 공황 심리를 불러올 수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 김광두 교수 =거시지표를 보면 현 상황이 위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97년과는 여러 측면에서 다른 상황입니다.

외환보유액이나 경상수지 측면에서도 당시만큼 어려운 단계는 아닙니다.

다만 이 상태가 지속되면 곤란합니다.

△ 최 위원 =지표 경제는 비교적 괜찮은데도 불구하고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김 교수 =산적한 현안에 대한 정부의 대응능력을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과거 기아차 처리과정을 보면서 외국인들 역시 한국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의심을 품었습니다.

금융시장 불안만 해도 오래된 문제인데 정부는 계속 미봉책만 썼지 본질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불신이 위기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또 노조를 비롯한 각종 이익집단이 과거보다 훨씬 강하게 자기이익을 대변하고 있어서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정치권은 기능을 상실한 상태여서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어요.

△ 최 위원 =포드가 대우차 인수를 포기하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순매도로 돌아서는 등 대외신인도에 이상조짐이 보입니다.

△ 전 소장 =시장의 반응은 현재 상황보다는 앞으로의 전망에 더 많이 영향을 받습니다.

외국인들은 한국이 직면한 대내외 여건 악화가 향후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로막을지, 경제개혁이 제대로 진행될지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의 주식순매도는 좀더 긴 시각에서 봐야 합니다.

순매도 자체가 자본의 순유출로 직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 현금보유나 채권 등 다른 유형으로 잔류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문제는 대우차 매각 지연 등이 은행권 구조조정의 지연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외국인들의 시각입니다.

△ 김 교수 =대우차 부실이 예상보다 커서 포드가 인수를 포기했다는 외신 보도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한국 기업들의 회계장부가 엉망이라는 것은 월가에서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포드같은 국제적 기업이 그런 사실을 모를리 없습니다.

채권단도 부실을 사실대로 공개했습니다.

다만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의 구조조정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평가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경제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 최 위원 =경제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들이 강구돼야 합니까.

△ 전 소장 =정부가 구체적으로 실천가능한 개혁 스케줄과 앞으로의 비전을 분명히 제시해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합니다.

국민들도 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느껴야 합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가졌던 위기극복 의지와 희생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어요.

정치권 역시 국가경제 위기를 넘는데 여.야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 김 교수 =원칙과 질서를 확립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최근 일어난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아무도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래서는 도덕적 해이와 부정부패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현 정부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정치철학을 제시했지만 두 문제가 상충될 경우 이를 조정하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조를 비롯한 이익집단의 충돌이 일어나면 정부는 조정기준을 명확히 세워야 합니다.

저는 국가경쟁력을 기준으로 정부가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 위원 =구조개혁에 대해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지금까지의 구조개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전 소장 =개혁이 그동안 하드웨어에 초점을 둬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진정한 개혁은 소프트웨어를 바꾸는 일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제도의 정착과 함께 의식과 관행의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외형적 변화에 걸맞은 내적 변화가 따라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원칙으로 돌아가는 자세가 요구됩니다.

엄정한 법 집행이 수반돼야 기본이 통합니다.

어느 나라나 규칙은 잘 정해져 있지만 이를 집행하는 것이 문제 아닙니까.

△ 김 교수 =정부가 추진해온 4대부문 개혁중 금융과 기업부문은 그나마 성과가 조금은 있다고 하지만 공공 및 노동부문은 거의 개선된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금융 기업부문 역시 투명성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4대부문이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따라서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중인지 정부를 제외한 제3의 기관이 엄밀하게 점검해야 할 시점입니다.

만약 구조조정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오면 원인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정부는 스스로 개혁에 만족하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정부가 최근의 경제위기를 ''시장의 과민반응''으로 인식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시장경제는 시장 참여자들의 반응에 토대를 두는 것 아닙니까.

△ 최 위원 =금융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대내외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요.

△ 김 교수 =정부가 좀 더 솔직해져야 합니다.

외환위기 이후 투신권 문제 해결만 해도 처음에 부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가 나중에 들통난 것 아닙니까.

정부 정책이 투명하고 일관성있게 추진돼야 하는데 국민들로부터 자꾸 믿음을 잃고 있습니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특히 은행의 구조조정 청사진을 빨리 보여줘야 합니다.

부동자금은 많은데 은행 대출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구조조정 전망에 대한 은행의 불안감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별로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차별적으로 적용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기업 소매 주택금융 등 은행마다 경영방법이 다른데 일률적으로 같은 비율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BIS비율 차등 적용은 막힌 자금시장을 풀어주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 전 소장 =금융불안은 불확실성이 누적된 결과입니다.

신뢰 회복은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제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정부는 여론을 의식해서 단기처방에 매달리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근본문제 치유에 집중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일시적 처방을 동원할 수 있겠지만 그 경우에도 근본적 처방에 역행해서는 안됩니다.

△ 최 위원 =정치권이 정쟁에만 매달려 국회가 공전되고 있는 탓에 구조개혁 관련법안 처리까지 지연되고 있습니다.

공적자금 추가조성도 미뤄져 경제위기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정치권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 김 교수 =나라가 무너지면 여든 야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당은 좀 더 양보하고 야당은 민생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저는 여.야가 정치문제는 논의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경제관련 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여.야 공동비상경제대책팀 마련을 제의합니다.

우선 경제부터 살려놓고 봐야 합니다.

정치권이 경제위기 해결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대내외 경제주체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 전 소장 =경제개혁 법안 처리와 공적자금 조성 동의 등이 가장 시급합니다.

지금 국제금융시장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국의 정치권이 대승적 차원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협조하고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어느 나라든 경제위기 뒤에는 정치불안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는 것을 정치권이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정리=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