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나는 세울 목적조차도 없어"

진성구가 체념한 듯 자신 없는 목소리로 이성수에게 말했다.

"아니 있어.아프리카의 유 박사 부부 얘기를 영화로 만들 때 네가 직접 연출을 하는 거야.혜정씨는 내가 설득할 수 있어"

"정말로 내게 연출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확신해.사랑하는 여자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 여자 때문에 고뇌를 맛보고 있으니까.

진정한 사랑은 결국 어떤 형태든 고뇌가 따르게 마련이고 사랑과 고뇌는 창조를 위해서만 존재의 의의가 있는 거야…"

"이제는 이 고뇌를 더 견딜 수 있다는 자신이 없어"

"그럼 예수를 믿어"

"뭐라고?"

"크리스천이 되란 말이야"

"뭐 크리스천?"

이성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나는 크리스천이 되어 고뇌를 극복할 수 있었어"

이성수의 말에 진성구는 놀랐다.

"무엇이 너를 크리스천으로 만들었는데?"

진성구가 물었다.

"단 하나의 문장이! 도스토예프스키가 한 말. ''Conscience without God is horror, because it may lose its way to utter immorality(신이 없는 양심은 공포다.

그것은 완전한 부도덕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말에 나는 실제로 무서운 공포를 느꼈어.내가 지금 아무리 양심적으로 행동한다 해도 그것이 최악의 부도덕함으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어.신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아마 양심은 언젠가 부도덕으로 바뀔 수밖에 없을 거야"

이성수의 말에 진성구는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그가 결혼을 앞둔 이혜정을 데리고 여행하기로 한 것은 부도덕의 극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았다.

특별히 양심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혜정과 같이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은 자신의 양심이 부도덕의 극치로 바뀐 산 증명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성수가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25명의 의사들과 자원봉사단원들 중 24명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어.그때 바이블을 다시 정독해보기로 하고 여행중 시간 나는 대로 열심히 읽었지.그렇지만 그때는 별 큰 의미를 찾지는 못했어.특히 신약성서 중 복음서 내용에 나열된 수많은 기적에 대한 의심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토머스 제퍼슨이 복음서 내용 중 기적부분을 풀칠해 가리고 읽었던 이유를 알 만했어"

이성수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어느 작가의 글을 우연히 접했지.자신이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찾게 된 이유가 두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때문이라는 글이었어.그래서 나는 톨스토이의 ''부활''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다시 읽었고,도스토예프스키의 글 중 ''신이 없는 양심은 공포다.

그것은 완전한 부도덕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는 내용을 접하게 되었지.순간 나는 강한 충격을 받았고,그때부터 진실한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