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문화연구소 이사장인 김태길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수필집 ''초대''(샘터사)를 펴냈다.

지난 50년간 틈틈이 쓴 짧은 글을 모은 이번 책은 ''수필로 읽는 한국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씨는 일상적인 삶에서 보고 느낀 단상을 중심으로 시대의 아픔을 담아낸다.

1962년 산림녹화작업에 동원된 날의 기록.

''몇그루 심지도 않았는데 점심시간이 되었다는 통문이 돌았다.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을 펼치는데 모두가 까만 꽁보리밥이다.밥알이 메주콩처럼 굵고 거칠어보인다.찬도 민망할 정도로 열악했다.나는 내 도시락이 흰쌀밥임을 아는 까닭에 그것을 펼쳐놓을 배짱이 생기지 않았다''

밥을 굶은 ''교수님''은 서울역에서 리어카로 삯짐 끌던 대학생 시절을 회상한다.

통금위반죄로 집어넣겠다는 순경의 협박에 이틀 만에 두손 들었던 경험.

집으로 돌아온 교수는 아내에게 밥에 보리를 넣으라고 한다.

''봄의 발걸음은 예식장으로 들어서는 신부의 발걸음보다도 수줍다.
민주주의의 발걸음도 봄의 수줍음을 닮은 것일까.한걸음 나섰다 한걸음 물러서고,한걸음 멈추었다 다시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다.그러나 우리의 민주주의도 결국은 앞으로 가리라고 믿고 싶다''(1964)

노학자의 연륜과 철학을 느낄 수 있는 산문들이 정갈한 언어로 다듬어져 있다.

''별나라와 시한부인생''''잃어버린 가을'' 등.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