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대 금융개혁중 하나가 미국에서 1980년대 선풍을 일으켰던 정크본드다.

한국에선 요즘 뒤늦게 하이일드펀드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고 있다.

이는 1970년 워튼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드럭셀 증권사에 입사하며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마이클 밀큰이 창시했다.

개별적으로는 아무리 부도위험이 높은 정크본드도 여럿을 한데 묶으면 초우량 채권과 거의 비슷한 리스크로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재무이론을 그는 실행에 옮겼다.

투자부적격 기업들 회사채로 펀드를 구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 정크 본드를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파는 것이다.

이로써 사람들은 새 고수익 투자기회를, 그리고 중소기업들은 은행대출보다 저렴하고 풍족한 새 자금조달 기회를 얻었다.

마이클 밀큰은 나중에 탐욕이 지나쳐 결국 내부거래 죄로 실형을 살고 금융계에서 축출됐다.

지금은 자신의 직장암 치료와 교육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와 MIT 경영대의 레스터 서로우 교수,뉴욕타임스의 토마스 프리드만 칼럼니스트 등은 밀큰으로 인해 금융이 민주화됐다며 그의 공적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런 마이클 밀큰의 뒤를 이어 21세기 금융시장을 또 한번 일대 혁신할 것으로 주목되는 사람이 풀만그룹(Pullman Group, LLC.)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올해 나이 38살의 데이비드 풀만이다.

워튼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밀큰의 동문이다.

마이클 밀큰이 중소기업들을 해방시켰다면 풀만은 개인을 해방시키고 있다는 칭송을 듣고 있다.

1997년 영국의 록가수 데이비드 보위가 15년 만기 채권 5천5백만달러 어치를 발행토록 해 준 것을 시발로 모타운 음반사 작곡가 3명의 3천만달러 어치 홀랜드-도지에흐-홀랜드 채권, 소울 음악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의 1억달러어치 채권, 또 이슬리 브러더스의 1억달러대 채권 등을 유동화했다.

이들 채권은 모두 해당 음악가들의 미래 인세 수입을 근거로 발행됐고 무디스로부터 A등급을 받았다.

이는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 GM과 동일한 신용등급이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예술계 학부를 나온 데이비드 풀만은 연예업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와튼스클 및 월가에서 배우고 익힌 재무기법, 그리고 세법, 상법, 저작권법 등의 법률 지식을 바탕으로 1998년 1월 풀만그룹을 세우며 개인 유동화 사업에 본격 나섰다.

저작권, 특허권, 스포츠 고용계약, 입장료 수입, 영업비밀 등 온갖 종류의 무형자산을 근거로 한 유가증권 발행에 전문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풀만의 금융 혁신은 아직 명칭도 없다.

다만 실레브러티("명사"라는 뜻) 채권업, 그램("매력적"이란 뜻의 글래머러스의 준말) 뱅킹, 또는 개인 유동화업 등으로 불리고 있다.

이렇게 발행된 개인 채권들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푸르덴셜 보험사 등의 기관 투자가에 일괄 인수된다.

관련 금융기법 비밀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쉽지 않은 모양이다.

풀만그룹은 자신의 비즈니스모델과 영업비밀을 경쟁사에 누설했다며 지난해 11월 16일 뉴욕주 대법원에 푸르덴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궁지에 몰린 자의 최후 발악"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하지만 혁신자에겐 항상 적이 많은 법이다.

마이클 밀큰도 실은 기득권 세력의 반격에 억울하게 희생된 케이스라는 시각도 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설사 풀만이 밀큰처럼 중도에 좌초하더라도 그의 혁신은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될 것이고 이로써 인간 삶이 전과는 전혀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위원 shin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