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회화의 독자적 경지를 개척한 폴 세잔.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 에밀 졸라.

두사람이 나눈 30여년간의 우정은 한편의 소설같다.

남프랑스 엑상 프로방스의 개구쟁이 소년시절부터 끈끈하게 이어진 예술의 동반자.

졸라는 병약한데다 지독한 근시여서 같은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때마다 힘이 세고 덩치가 큰 세잔이 나타나 악동들을 물리쳐주곤 했다.

졸라는 고마움의 표시로 세잔에게 사과를 갖다줬다.

그 사과는 훗날 세잔 정물화의 주된 소재가 됐다.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다''던 세잔의 정물 실험은 유년기의 우정에서 싹튼 선물이었다.

세잔이 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도 졸라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후기 인상파와 자연주의의 거장으로 각각 대가의 길을 걷던 두사람은 나중 졸라의 ''작품''때문에 파국을 맞는다.

세잔이 그 소설 속에 그려진 ''실패한 천재'' 화가를 자신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시인 이가림(인하대 불문과 교수)씨가 펴낸 ''미술과 문학의 만남''(월간미술,1만2천원)은 이같은 예술가들의 관계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고급 에세이다.

장르를 넘나드는 퓨전문화 시대의 새로운 그림읽기라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화가 18명과 문인 18명의 삶이 어우러져 있다.

원색 도판 1백여장이 실려있어 ''읽고 보는 맛''을 더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양심의 동지로 공동전선을 형성했던 피카소와 엘뤼아르,물의 몽상에 몸을 맡겼던 모네와 바슐라르,실존의 의미를 승화시킨 자코메티와 사르트르 등 내로라 하는 인물들의 삶과 예술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초현실주의 운동의 영원한 맞수 미로와 브르통의 얘기도 담겨 있다.

''공설전당포''등의 시집으로 초현실주의 선언을 주도한 브르통이 미로를 비롯한 미술계의 동지들과 뜻을 합치면서도 한편으로는 돈에 사로잡힌 그들을 프티 부르주아라고 비판하는 배경을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 누보 로망의 기수 솔레로스는 17세기 화가 푸생의 정신적 제자였다.

그는 ''푸생 읽기''라는 소설까지 쓰면서 그림을 연구했고 작품속에서 그 명증성을 되살려냈다.

저자는 프랑스 유학 시절 ''문학 속의 그림''과 ''그림 속의 문학''에 매료됐다고 한다.

문학과 회화의 관계를 폭넓게 연구한 지도교수 덕분이기도 했지만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시인으로서 ''자매예술''인 미술에 각별한 친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프랑스 예술의 경우 중세에서 현대까지 숱한 시인·작가들과 미술가들이 장르상의 칸막이를 넘어 울림과 되울림을 주고받는 교감을 행복하게 나눴다"고 소개했다.

화가들에 관한 얘기는 최근 나온 ''창해 ABC북''(도서출판 창해,각권 9천원)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 시리즈는 손에 잡히는 크기의 사전식 단행본으로 전면 컬러에 분량은 권당 1백20쪽 안팎이다.

프랑스 플라마리옹 출판사의 시리즈를 번역한 것.미술 역사 종교 고고학 문화유산 등으로 나눠 연내 1백종까지 선보인다.

그중 1∼3권이 ''반 고흐''''샤갈''''밀레''편이며 앞으로 ''세잔''''마네''''피카소''등이 계속 나오고 문학 과학 자연 스포츠 관련서도 이어질 예정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