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기행] 더 나아갈데 없어 숱한 사연 남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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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행 배에 오르지 못하게 된게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난생 처음 야생의 해달을 볼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이른 아침, 전남 해남 땅끝마을의 방파제길 초입.
바닷바람을 등지고 무작정 출항허락이 떨어지길 기다리는데 난데없이 "와"하는 탄성이 터졌다.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바로 아래 갯가로 시선을 던졌다.
새끼 목덜미를 문 여린 몸집의 암갈색 물짐승이 방파제길의 사각바위 틈새로 사라졌다.
누군가 수달이라고 했고, 아무도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지만 사실은 해달이었다.
그 해달은 인기척이 낯설지 않을 터인데도 무슨 까닭인지 새끼를 선착장쪽 다른 바위틈새로 옮기고 있었다.
어미를 부르는 새끼와 그 새끼를 달래려는 어미 해달의 끽끽대는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어미는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고 서너걸음 폭의 물을 건너 또 한마리 새끼를 데리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새끼는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그놈은 가까이 지켜보던 아이를 어미로 알았는지 아이가 내민 손을 따라 기어가기도 했다.
남태평양 이스터섬의 거대석상 모아이를 닮은 "얼굴바위", 단단히 뿌리박은 해송이 잘 어울리는 "덩치(?)바위", 그 사이 호리병 모양으로 흘러드는 얕은 바닷물과 방파제에 의지해 사는 해달.
땅끝마을은 남녘 작은 포구의 한적함과 자연의 싱싱한 생명력의 절묘한 조화로 한여름 아침을 열고 있었다.
보길도는 포기해야 했다.
바람과 파도로 인해 모든 배의 발이 묶여 버렸다.
전망대가 있는 사자봉에 올랐다.
사자봉 주차장까지는 잘 닦인 포장길이 나 있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의 2백50m 오르막길은 뜻밖의 기쁨을 안겨 주었다.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나무, 밉지 않게 놓인 인조나무 계단이 걸음을 가볍게 했다.
독일 하이델베르그의 철학자의 길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친 바람을 받아내는 전망대 오른쪽 아래는 사자포.
사자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형상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해로유입설을 뒷받침하는 달마산 미황사(美黃寺)의 창건설화가 시작되는 곳이다.
조선 숙종때 병조판서를 지낸 민암이 지은 "미황사 사적기"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돌(石)배가 정박하지 않고 포구에서 머뭇거렸다.
의조라는 스님이 합장하자 뭍에 닿은 돌배에는 경전, 금으로 된 사람과 불상, 절을 지을 재목 등이 실려 있었다.
깨뜨린 검은 바위에서는 황소가 튀어 나왔다.
황소는 경전과 불상을 짊어졌다.
황소는 지금의 미황사터에서 울음을 토하더니 숨을 다했다.
그 황소의 아름다운(美) 울음소리, 금으로된 사람이 발했던 빛(黃)을 상징하는 미황사는 그렇게 그곳에 세워졌다.
달마의 얼굴처럼 우락부락한 달마산의 미황사는 아주 수수했다.
화장끼 없는 여인의 맨얼굴을 보는 듯 담백했다.
천년풍상에 씻겼는지 단청의 흔적 조차 찾을수 없다.
진입로는 동백의 두터운 잎으로 뒤덮였다.
동백이 한꺼번에 꽃망울을 틔울 때면 그 진홍빛 울음이 단아한 사찰분위기와 기막힌 대조를 이룰것 같았다.
보길도에서 보려던 고산 윤선도의 자취는 연동리의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곳에는 해남 윤씨 종가의 고택과 녹우당, 공재 윤두서상(국보 240호), 해남윤씨 가전고화첩(보물 481호), 윤고산 수적관계문서(보물482호), 지정 14년(고려공민왕3년) 노비문서 등이 보존되어 있다.
뒷산의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241호)도 좋았다.
두륜산 대흥사(대둔사)는 규모가 느껴졌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다.
이 지역 8개 시군의 말사를 관할하는 대찰이다.
깊지 않은 계곡이 경내를 가로지르고 있다.
심직(尋直)이란 글자가 새겨진 돌다리가 그 계곡을 잇고 있다.
조선 정조때의 명필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에 얽힌 글씨얘기가 전하는 대웅보전의 현액, 가사를 입은 천불이 안치된 천불전, 서산대사의 제사를 모시는 표충사(表忠司), 초의선사의 다도유물 그리고 56기에 달하는 부도 등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입구에서 시작되는 나무숲길은 천천히 걷기에 그만이다.
흐린 날이면 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울창한 나무터널을 이루고 있는 이 길은 짧지 않은 여정의 피로를 씻어 주기에 충분했다.
내변산 내소사의 전나무길, 화순 운주사의 상서로운 탑길 등 많지 않은 여행길에서 꼽아두었던 좋은 사찰길에 못지 않았다.
해남=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난생 처음 야생의 해달을 볼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이른 아침, 전남 해남 땅끝마을의 방파제길 초입.
바닷바람을 등지고 무작정 출항허락이 떨어지길 기다리는데 난데없이 "와"하는 탄성이 터졌다.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바로 아래 갯가로 시선을 던졌다.
새끼 목덜미를 문 여린 몸집의 암갈색 물짐승이 방파제길의 사각바위 틈새로 사라졌다.
누군가 수달이라고 했고, 아무도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지만 사실은 해달이었다.
그 해달은 인기척이 낯설지 않을 터인데도 무슨 까닭인지 새끼를 선착장쪽 다른 바위틈새로 옮기고 있었다.
어미를 부르는 새끼와 그 새끼를 달래려는 어미 해달의 끽끽대는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어미는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고 서너걸음 폭의 물을 건너 또 한마리 새끼를 데리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새끼는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그놈은 가까이 지켜보던 아이를 어미로 알았는지 아이가 내민 손을 따라 기어가기도 했다.
남태평양 이스터섬의 거대석상 모아이를 닮은 "얼굴바위", 단단히 뿌리박은 해송이 잘 어울리는 "덩치(?)바위", 그 사이 호리병 모양으로 흘러드는 얕은 바닷물과 방파제에 의지해 사는 해달.
땅끝마을은 남녘 작은 포구의 한적함과 자연의 싱싱한 생명력의 절묘한 조화로 한여름 아침을 열고 있었다.
보길도는 포기해야 했다.
바람과 파도로 인해 모든 배의 발이 묶여 버렸다.
전망대가 있는 사자봉에 올랐다.
사자봉 주차장까지는 잘 닦인 포장길이 나 있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의 2백50m 오르막길은 뜻밖의 기쁨을 안겨 주었다.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나무, 밉지 않게 놓인 인조나무 계단이 걸음을 가볍게 했다.
독일 하이델베르그의 철학자의 길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친 바람을 받아내는 전망대 오른쪽 아래는 사자포.
사자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형상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해로유입설을 뒷받침하는 달마산 미황사(美黃寺)의 창건설화가 시작되는 곳이다.
조선 숙종때 병조판서를 지낸 민암이 지은 "미황사 사적기"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돌(石)배가 정박하지 않고 포구에서 머뭇거렸다.
의조라는 스님이 합장하자 뭍에 닿은 돌배에는 경전, 금으로 된 사람과 불상, 절을 지을 재목 등이 실려 있었다.
깨뜨린 검은 바위에서는 황소가 튀어 나왔다.
황소는 경전과 불상을 짊어졌다.
황소는 지금의 미황사터에서 울음을 토하더니 숨을 다했다.
그 황소의 아름다운(美) 울음소리, 금으로된 사람이 발했던 빛(黃)을 상징하는 미황사는 그렇게 그곳에 세워졌다.
달마의 얼굴처럼 우락부락한 달마산의 미황사는 아주 수수했다.
화장끼 없는 여인의 맨얼굴을 보는 듯 담백했다.
천년풍상에 씻겼는지 단청의 흔적 조차 찾을수 없다.
진입로는 동백의 두터운 잎으로 뒤덮였다.
동백이 한꺼번에 꽃망울을 틔울 때면 그 진홍빛 울음이 단아한 사찰분위기와 기막힌 대조를 이룰것 같았다.
보길도에서 보려던 고산 윤선도의 자취는 연동리의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곳에는 해남 윤씨 종가의 고택과 녹우당, 공재 윤두서상(국보 240호), 해남윤씨 가전고화첩(보물 481호), 윤고산 수적관계문서(보물482호), 지정 14년(고려공민왕3년) 노비문서 등이 보존되어 있다.
뒷산의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241호)도 좋았다.
두륜산 대흥사(대둔사)는 규모가 느껴졌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다.
이 지역 8개 시군의 말사를 관할하는 대찰이다.
깊지 않은 계곡이 경내를 가로지르고 있다.
심직(尋直)이란 글자가 새겨진 돌다리가 그 계곡을 잇고 있다.
조선 정조때의 명필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에 얽힌 글씨얘기가 전하는 대웅보전의 현액, 가사를 입은 천불이 안치된 천불전, 서산대사의 제사를 모시는 표충사(表忠司), 초의선사의 다도유물 그리고 56기에 달하는 부도 등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입구에서 시작되는 나무숲길은 천천히 걷기에 그만이다.
흐린 날이면 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울창한 나무터널을 이루고 있는 이 길은 짧지 않은 여정의 피로를 씻어 주기에 충분했다.
내변산 내소사의 전나무길, 화순 운주사의 상서로운 탑길 등 많지 않은 여행길에서 꼽아두었던 좋은 사찰길에 못지 않았다.
해남=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