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카섹스 단속반장을 맡어유.사램이 개허구 겨뤄봤자 사램이 이기면 개버덤 나은 늠이구 개헌티 지면 개만두 못헌 늠이구 개허구 비기면 개같은 늠인디 그 노릇을 허라구유"

촌무지랭이 농꾼인 이씨가 난데없이 감투를 쓰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밭두둑에 차를 세워 두고 "일"을 벌이는 도시인탓에 풍기문란이 이만저만 아니기 때문.이 모든 사태가 시골사람들을 "물로 보기"때문이다.

장평리 부녀회장 김씨도 마찬가지다.

"지(서울사람)가 입으면 잠자리 날개고 내(촌사라)가 입으면 풍뎅이 날개인감.논배미에 허수애비두 해마다 옷이 닳어지는 세상에 나라구 맨날 혼인집 댕기는 옷으루 초상집 댕기란 벱이 있나.
좋다 이거여.너는 상행선,나는 하행선,갈데까지 가보자구"

소설가 이문구씨의 창작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는 "충청도의 힘"을 보여주는 해학과 풍자문학의 창작집이다.

김명인의 시 "의자"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빌려온 이 소설집은 괄세받는 농민들의 당당한 자기 주장을 담고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유실수도 아닌 것이 덩굴져서 목재도 못되지요. 키도 작고 무더기로 줄기를 뻗어서 본체가 어디고 가지가 어딘지 구별도 안됩니다. 한마디로 주목받지 못하는 인생이죠.하지만 이런 못난이 잡목이 없으면 숲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내몸은...''은 보잘것없는 시골 농부들을 천덕꾸러기 나무에 비유한 연작집.

장평리 김회장은 찔레나무에,장천리 이장 송학씨는 소태나무에 각각 대응된다.

화살나무,개암나무,으름나무,고욤나무 등 제목에 등장한 수종들은 모두 별볼일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될 숲의 소중한 일부라는 게 작가의 주장이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상처받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려는 것입니다. 납작 엎드린 가난한 인생이지만 나름대로 존재의의가 있지요.
나만 당하고 사는 인생은 없습니다"

김동리 선생의 직계 제자인 이씨는 한국 문단에서 가장 뛰어난 스타일리스트자 리얼리스트로 꼽힌다.

갓 등단한 신인에게 좋아하는 선배가 누구냐고 물었을때 오정희와 이문구 이름이 나오면 거의 "정답"이라 할수 있다.

일찍이 문학평론가 황현산씨는 "작가는 붓가는대로 따를 뿐인데 붓이 삶의 제 결을 따라간다"고 경탄했다.

''세월의 풍화를 견디며 늠연히 서있는 왕소나무(시인 유용주)''란 존경어린 평가도 있다.

"요즘 경기대 문예창작과에 강의나가는데 학생들에게 대장장이 엿장수 전과자들을 인터뷰해오라고 시킵니다. 매일 가족,친구들 틈에 있으면 인간에 대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소설공부는 곧 인간 공부입니다"

작가는 말을 새로 만들어쓸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이씨는 70년대 "-거였다"란 말을 처음 사용,논란을 일으켰다.

당시까지 문인들은 "것이다""것이었다"만을 썼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 이씨의 소설은 김동리선생에 의해 학과 시험문제로 제시되기도 했다.

"우리에게 어떤 안식이 있느냐고 네가/네번째 나에게 묻는다/모든 것을 부인한 한낮인데 부지런한 낮닭이 어디선가 길게 또 운다/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시 ''의자'' 중)

우리는 모두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