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그에 앞서 자본확충이나 부실정리가 선행되지 않을 경우 시너지효과를 내기 어렵다는게 은행들의 입장이다.
지난 2일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과 은행장들의 조찬간담회는 이런 시각차를 확인시켰다.
한 시중은행장은 "합병뒤 적어도 1년은 자본확충이 사실상 올스톱된다"며 은행의 자발적인 자본확충 노력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칼라일그룹(한미은행), 서버러스펀드(조흥 광주은행) 등 투자펀드의 지분참여에 대해 정부의 전향적인 검토를 주문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해외 유수금융기관이 아니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또 합병전 자본확충이 자칫 독자생존으로 변질될 소지도 있다며 부정적인 시각이다.
합병전 부실채권 정리문제도 첨예한 논란거리다.
김경림 외환은행장은 배드뱅크(부실정리은행) 설립 등을 통해 부실자산부터 먼저 털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은행들은 부실자산을 "장부가"로 넘기고 부족분을 정부가 메워 주길 희망한다.
싯가로 넘길 경우 막대한 매각손실이 발생,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하락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정부도 배드뱅크 방식을 검토중이지만 방법면에선 큰 차이가 있다.
배드뱅크로 부실자산을 넘길땐 "싯가"로 넘겨야 회수율을 높이고 청소효과가 나타난다는 입장이다.
대신 BIS 비율이 8% 밑으로 떨어져도 적기시정조치를 유예해 준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합병 인센티브로 제시한 후순위채 매입과 인허가시 우대에 대해서도 은행들은 시큰둥한다.
주택 하나은행은 후순위채를 창구에서 팔고 있다.
만기 5년짜리 후순위채는 9%대, 10년짜리는 12% 정도의 금리를 부담해야 하므로 장기간 역마진이 난다.
후순위채 매입이 인센티브가 되기 어려운 이유다.
인터넷뱅킹 등 신규업무도 투자능력이 있는 은행과 없는 은행이 확연히 구분돼 큰 이점은 없다.
정작 은행들이 가장 원하는 지원책은 세금문제다.
합병시 취득.등록세, 금융지주회사 설립과정의 양도세, 자회사 배당소득세 등에 대해 감면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세제가 금융지주회사 설립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겠지만 추가로 지원할게 별로 없다는 입장이다.
결론적으로 은행들은 부실정리, 인력 점포 구조조정, 자본확충, 세제지원 등 합병의 걸림돌부터 먼저 제거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과제들을 해결하는 것 자체가 그리 수월한 작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문에 항간의 소문대로 일부 은행들이 조만간 합병을 선언, 2차 구조조정의 막이 오르더라도 합병이 실제 추진되는 과정은 1차 구조조정때와 달리 훨씬 길어질 것이라는게 금융권 사람들의 예상이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