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인생을 다룬 영화치고 비극으로 끝을 맺지 않는 영화는 별로 없다.

막장 인생에는 으레 폭력이 난무하고 처절한 비극으로 결론을 맺는다.

오승욱 감독의 데뷔작인 "킬리만자로"는 제목에서 감지되듯 삶에 짓눌린 사람들의 한을 그린 영화다.

조용필의 동명 노래가사에 나오는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져 간" 남자들의 삶의 흔적을 담담하게 담았다.

욕설과 피비린내 나는 폭력이 시종일관 화면을 가득 채우지만 폭력 이면에 감춰진 삼류 인생들의 "서글픈 정서"를 애처롭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악질형사 해식(박신양)은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권총 자살한 쌍둥이 동생 해철때문에 직위해제 된다.

동생이 해식의 권총을 몰래 훔쳐 사고를 쳤기 때문.해식은 동생의 유골을 들고 20여년만에 고향인 주문진에 내려와 해철의 "흔적"을 밟게 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해식은 해철때문에 감옥에 간 주문진 깡패 두목인 종두(김승철)에게 두들겨 맞는다.

"넌 해철이의 반도 안돼"라는 욕을 먹으며..해식은 한때 동생과 피를 나눈 형제처럼 지낸 번개(안성기)의 도움으로 종두에게서 풀려나 전도사(최선중) 중사(정은표) 등 같은 패거리들과 어울린다.

해식은 자신도 모르게 종두와 번개 패거리간의 이권다툼에 말려들고 그 갈등이 심상치않음을 감지한다.

"킬리만자로"는 형사와 깡패로 인생이 갈려 서로 증오하며 살아온 쌍둥이형제가 모티브다.

동생의 생활을 혐오해 온 해식은 고향에서 해철의 인생궤적을 밟으면서 옳다고 믿었던 자신의 삶이 틀린 것일 수도,동생의 초라한 삶보다 오히려 부끄러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는다.

막장인생의 삶을 현실적이면서 진솔하게 그린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지만 톤이 너무 무겁고 침침한 편이다.

남자들의 폭력 세계를 다룬 영화들이 그렇듯이 스토리가 단순하다.

하지만 모두 불쌍한 인생들인 등장인물들의 처절한 싸움 뒤안에선 공허감과 쓸쓸함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에서 중사가 기관총을 내리 갈겨 아이 엄마까지 죽이는 충격적인 장면은 이 영화의 가치를 반감시키는 대목이다.

비극적인 클라이막스를 위해 감독은 의도적으로 피바다를 연출한 것 같다.

하지만 "기관총 난사"라는 연출 기법은 막장인생을 현실감있게 그린 전체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는,작위성이 엿보이는 충격 요법이다.

"편지""약속"에서 부드러운 남자로 등장했던 박신양이 쌍둥이형제의 1인 2역을 맡았다.

증오감과 죄책감이 교차하는 악역 해식과 비록 잠깐이지만 자신의 삶을 저주하는 해철이라는 전혀 다른 두 인물의 이미지를 무난히 소화해 냈다.

늙고 비굴하기까지 한 깡패역을 맡은 안성기는 비애가 담긴 눈빛연기를 보여준다.

영화초반 쌍둥이 형제가 만나는 장면은 각각 따로 찍은 뒤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거쳐 하나의 화면에 합성하는 형식으로 완벽하게 재현해 낸 것이다.

오승욱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초록 물고기"의 시나리오 작가로 인정받은 신예로 서울대 미대출신이다.

20일 개봉.

이성구 기자 sklee@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