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경력 32년째인 임현식(55)씨.

그는 질그릇같은 느낌의 연기자다.

첫눈에는 투박해보이지만 손길이 닿을 수록 윤기가 나는 질그룻의 진가는 뒤늦게 드러나게 마련.

임씨는 요즘 시쳇말로 웬만한 주연급 연기자 뺨치게 잘 나가는 연기자다.

일주일동안 방송 3사의 채널을 요리조리 돌리다보면 금세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MBC "허준"의 임오근,KBS 일일시트콤 "멋진 친구들"의 방송국 부장 임현식,일요일 아침에는 SBS의 "좋아좋아"에서 평창동 동장 운세만으로 시청자들을 찾는다.

임씨는 "세개 프로그램에 한꺼번에 출연하느라 친구들과 술 한 잔 할 새도 없다"며 불평아닌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의 인기비결은 약방의 감초처럼 드라마의 분위기를 톡톡 튀게 하는 능청스런 연기.

입을 살짝 벌린 채 눈을 휘둥그레 치켜뜬 표정에 웃지않을 재간이 없다.

특히 드라마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재치넘치는 애드리브(즉흥 연기)는 그의 특허나 마찬가지.

허준 촬영이 한창이던 지난 7일 MBC 스튜디오안에서도 임씨의 장기가 유감없이 드러났다.

임금이 허준에게 하사한 호피위에서 잠을 자면 정력에 좋다는 얘기를 들은 오근.

"이보게 허 의원,자네가 한 달포정도 먼저 쓰고 내게 한 보름만 빌려주게나"라며 능글맞게 웃는다.

때로는 연출자가 극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재미있는 애드리브 몇개만 부탁해요"라고 할 정도다.

하지만 임씨는 "애드리브"라는 단어를 무척 싫어한다.

대신 그는 자신의 즉흥연기는"카덴차"( cadenza -기악연주에서 연주자가 맘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짧은 독주를 허용한 구간)란다.

"애드리브가 순간 반짝이는 재치를 발휘하는 것이라면 "카덴차 연기"는 촬영신을 완전히 이해한 후에 저절로 나오는 연기인 셈이죠".

허준의 이병훈 PD는 "그 사람은 한 상황에 대해 6~7개의 애드리브를 준비한다"며 "같은 장면이라도 연출자의 주문에 따라 전혀 다른 즉흥연기를 만들어내는 노력형 연기자"라고 평가했다.

임씨가 음악용어인 "카덴차"에 연기를 비유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그는 중2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 고등학교때까지 음악가를 꿈꿨던 음대 지망생이었다.

"그때만해도 반드시 베토벤을 좋아해야 할 것만 같은 이상한 사명감을 가질 정도로 음악에 푹 빠져있었어요. 막판에 포기하고 연극영화학과로 진로를 바꿨지만 그때의 음악공부가 연기에 두고두고 자산이 되고 있어요"

임씨가 연주자라면 연출가 이병훈은 그의 30년지기 지휘자인 셈이다.

지난 69년 MBC탤런트 공채 1기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선 임씨는 줄곧 이 PD와 한솥밥을 먹은 사이.

"갑봉이"로 연기자 임현식을 세상에 알린 "암행어사"의 당시 연출가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이후 "조선왕조 오백년" "거인의 손" 등 이 PD의 작품에 거의 빠짐없이 출연했다.

그는 ""암행어사"의 갑봉이가 춘향전의 방자못지 않는 인물이 된 것이나 "허준"에서 당초 유의태의 죽음과 함께 끝나는 임오근의 배역이 계속되는 것은 모두 제 연기를 이해하고 제대로 뽑아서 활용할 줄 아는 연출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한지붕 세가족"을 비롯 지금까지 그의 출연작은 3백편이 넘는다.

배역도 소매치기에서부터 판사까지 해보지 않은 역이 없다.

안해본 배역이 뭐냐고 묻자 "나 같은 해방둥이나 6.25세대가 늙은 형사나 퇴직을 앞둔 직장인으로 등장하는 중장년층 드라마의 주인공을 해보는게 바람"이라며 "그런 드라마라면 숀 코넬리처럼 젊은 여배우와의 베드신도 "마다"하지않는 노익장을 보여주겠다"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김형호 기자 chsan@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