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박정희의 죽음" 뮤지컬이 한창 진행중인 무대에 시선을 주면서 백인홍은 무아경 속에 빠져 있었다.

이혜정이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 말한다.

"일본 육사생도 시절 신입생교욱 프로그램으로 박정희는 일본 중화학 공장을 방문하게 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았을 때 중화학 건설이라는 꿈을 버릴 수 없게 했다"

박정희가 브리지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간다.

박정희가 브리지의 중앙에 도착하여 관객을 뒤에 두고 뒷짐을 지고 있을 때 무대 쪽 스크린으로 불꽃 조명이 비친다.

박정희가 활활 타는 용광로 앞에서 객석을 뒤로 뒤고 두 손을 번쩍 드는 모습을 보이다가 갑자기 객석을 향해 두 손을 든 채 돌아서더니 브리지를 왔다갔다하며 용광로의 불꽃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노래를 한다.

젊음의 불꽃,정열의 불꽃,승리의 불꽃,영광의 불꽃/불꽃 속에 살아 있는 대일본 제국의 힘/중공업은 강한 젊음,우리가 갈 길은 중공업의 길.농민은 불쌍한 여인,산업역군은 자신에 찬 젊은이/여기에 있었구나,대일본제국의 힘이/활활 타는 불꽃 속에 있었구나,대일본 제국의 오만함이.언젠가 뜻을 이루리,어떤 희생이 있더라도/한반도에 불꽃이 피어나게 하리,내 목숨 바쳐서라도/한반도에 풍성함이 찾아오게 하리,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무대에 갑자기 어둠이 찾아왔다.

백인홍은 정신이 멍한 상태였다.

김명희의 모습은 볼 수 없어 섭섭했지만 이혜정의 연기는 압도적이었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일 텐데도 이혜정이 방금 전 무대 위에서 보인 발랄함은 20대 여인을 무색케 할 정도였다.

백인홍은 이혜정이라는 여자가 결코 진성구의 내연의 여자로 남아 있을 여자가 아님을 확신했다.

5년 전 결혼을 한 이혜정을 향한 그리움을 떨쳐버리지 못해 진성구가 김명희를 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문득 들었다.

그는 갑자기 숨이 가빠왔다.

이혜정이 아무리 훌륭한 여자라 하더라도 김명희는 그보다 더 나은 여자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고 김명희가 이혜정의 대용품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백인홍은 조금전 진성구가 앉아 있던 객석 한 곳에 시선을 주었다.

그런데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백인홍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 로비로 나왔다.

마침 아까 그 직원이 그곳에 있었다.

"진성구씨 어디 가셨나요?"

"조금전 나가셨는데요"

"얼마전에요?"

"한 5분 정도 되었을 걸요"

백인홍이 극장 밖으로 나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진성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극장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진성구씨가 다시 돌아올까요?"

그곳 직원에게 다시 물었다.

"오늘밤은 다시 안 오실 것 같은데요"

백인홍이 극장 밖으로 나가려다 말고 뒤돌아보았다.

"김명희씨는 출연 안하나요?"

"오늘 연습 부분에는 나오지 않아요"

백인홍은 극장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내일 진성구를 만날 도리밖에 없었다.